장묘 행정을 장인정신으로

박태호 계장(서울시 노인 복지과)

 

1999년 11월 12일 모 방송국의 9시 뉴스에선 늦게 만학의 꿈을 이룬 주인공이 소개됐다. “앵커: 서울의 어떤 대학교가 12일 내년도 입시 수시 모집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직장 생활을 20년 넘게 한 은행의 지점장, 또 묘지 전문가인 시청의 6급 공무원도 합격했습니다.

 

기자: 서울 시청에서 묘지 전문가로 통한다는 장묘 담당 계장 47살 박태호씨, 공무원 생활 20년동안 주로 장묘를 담당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전문가 수준을 능가하게 되었습 니다. 박씨는 장묘 분야를 더욱 공부해 보겠다며, 늦은 나이지만 대학에 지원했고 결국 내년도 입시 사전 심사에 합격했습니다.“

 

주인공: 민속학이나 문화 인류학 쪽으로 공부해 가지고 우리 나라 장묘 문화 개선에 일조를 하고 싶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박씨는 박사 과정까지 마친 다음 시민 단체에서 장묘 문화 개선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이상 모뉴스 00기자였습니다.

 

“ 주인공은 바로 서울시 노인복지과에 박태호(47. 6급 일반직) 주임. 그는 5만명이 넘는 시공무원 가운데 최근까지 장묘행정을 전담한 전국 8도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 저도 처음엔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러나 일을 하다 너무 낙후된 분야인데다 손댈 곳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오히려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내가 만든 계획이 바로 정책으로 이어지니까 보람도 컸구요.“ 실제 전국 장묘 행정을 맡은 구청 공무원 직원들의 업무 연도는 평균 1년이하. 25구청 직원 중 1년을 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실제 작년 장묘 업무 담당자가 2명으로 한 명 더 보강되기 전까지 1천만의 인구를 가진 서울시엔 단 1명의 직원만을 둘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업무'로 여겨지던 장묘분야다.

 

박태호씨의 경우 94년 11월 동대문 구청 청소과와 본청 사회복지과에서 1년간 근무로 잠시 떠났던 걸 제외하면 10년 넘게 이 분야만 전담해 온 걸 생각한다면 과히 장묘행정의 장인이다. 그간 박씨가 이룬 업적만도 국내 최초의 무연고 사망자 화장 제도 (91년), 장묘 관리 업무의 전산화 (93년), 현대화된 납골당 건립 착수 (93년)등 94년 그는 잠시 떠났다가, 자신이 추진했던 제 2 화장장 건립 추진이 자신이 떠난 뒤 진척이 전혀 없는 걸 보고 인사과에 청원서를 냈다. 이유는 '그동안 닦은 견문과 경험을 버리기 아까우니 다시 시에서 장묘 업무를 담당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받아 들여졌고 95년 11월 다시 장묘 업무로 복귀했다. 나름대로 그에겐 소신이 있었다. < 이 시대에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는 나름대로 의 존재 가치와 남들에게 버려진 공간, 특정인을 위한 전담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 전부였다.>

 

하지만 주변의 눈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가득했다. < 얼마를 재미봤으면 다시 하려 할까.. > <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역시..> < 어쩐지 모두 꺼리는 자리에 꿈쩍 안고 잘 버틴다 싶었지... 무슨 소신이야 얼어죽을 소 신.. 다 생기는 게 있었기 때문이지..> 기가 막혔다. 억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따라 다니며 해명할 수도 없었다. 답답한 가슴을 활짝 열어 보 여 줄 수도 없었다. < 그게 아니구요, 사실은요.. > 하고 해명할 수도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더 묵묵히 그 자리를 더 책임감 있게 지키는 일 뿐이었다. 그는 오히려 전보다 더 열심히 발품을 팔아가며 자료를 모았다. 뿐만 아니었다. 자신의 자비로 미국, 캐나다, 일본, 프랑스등 해외시설을 견학하는 등 '극성'을 떨었다. 이런 유별 탓에 그는 서울시에서 독보적인 장묘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활동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94년엔 2천년대 서울시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천마총을 모델로 대형 합동 납골분 묘를 직접 개발해 냈다.

 

95.4 파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의 묘지를 둘러보고 참 충격적이었어요. 그들의 '죽은 자를 다루는 문화'가 너무 가슴에 와 닿았거든요. 특히 파리 근교의 유명한 JONCHEROLLES 묘지를 방문했을 때 예술로서의 보존 가치 에도 놀랐습니다. 또 묘지에서 그림 엽서 만들어 파는 것에도 놀랐구요..“ 그후 납골당 건립을 위해 무작정 반대하던 고양 시민을 설득해가며 합의점을 끌어내 건축협의를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98년엔 지방정부 공무원중 유일하게 법개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 장사 등에 관한 법률 > 부문이었는데 당시 그의 별명은 '핵' 이었다. 현장에 워낙 오래 있던 터라 장단점을 훤히 알고 있는 그는 조문 하나 하나를 일일이 분해하며 짚어 나갔다. 말 그대로 장묘 행정에 도사였다.

 

“ 시설이나 제도 개선 문제는 이제 본 궤도에 올랐습니다. 이제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고 화장 시설을 늘리는 것이 과제입니다. 반드시 서울 시내에도 화장장이 들어서야 합니다.“ 화장 전도사 박태호씨에게도 커다란 꿈이 있다. “ 꿈이요? 있죠. 물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화장장과 수준 높은 납골당 건설, 제 공직생활 최대의 꿈입니다. 내가 지은 화장장에 내가 지은 납골당에서 잠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