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의 마음 양지 바른 곳에 묻히는 게 명당

신중대 시장(현 안양시장)

 

1980년 대만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연수 중이었는데 그때 코스 중에 <공원 묘지> 가 들어 있더군요. 순간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다른 곳도 많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생겼구요. 그렇게 호기심 반, 불평 반으로 <공원 묘지>를 가 보게 되었습니다. 근데요... 그게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신중대 안양 시장이 대만 연수에서 그가 그토록 충격적으로 느꼈던 것은 과연 무엇 이었을까? 그 당시 대만 최고의 권력자였죠? 삼인남 부총통 부인의 묘가 있더라구요. 그런데 일반 서민 묘와 똑같은 거예요. 글쎄요? 전 한국에서 묘를 보아 온 사람이고 우리 생각으론 더욱이 그가 대만 최고의 권력자 중 한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로선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로든 우리 상식 밖의 일이었고 그래서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있어요. 대만은 법적으로 시한부 매장제여서 누구든지 7년이 되면 딴 사람이 그 자리에 또 잠들기 위해 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매장한지 7년이 되면 화장을 하여 공원묘지 않에 있는 납골당의 항아리에 모시도록 되어 있는 것이 었습니다. 대만에서는 지위, 재산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똑같이 묘지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사실이 유교문화에서 교육을 받고 생활해 온 저에게는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 이는 충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돌아온 신중대 시장은 한국에 돌아와서 철저한 화장 전도사로 변신 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공직자 중 고건 시장을 위시해 가장 적극적인 화장 문화 옹호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공직자인 만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사회적으로 아직 인식조차 별로 없던 화장 문화를 보급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을 터.. 신시장이 그 동안 지나온 터널을 함께 거슬러 올라 가 보자. “

 

제가 7대종손이고 남양주시에 40, 50년이 된 선산도 있습니다. 가만히만 있으면 가장 양지바른 곳에 무칠 수 있는 사람이구요. 그런 면에서 왜 긁어 부스럼 만드냐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건 우리 현실을 모르고 아무 생각없이 하는 소립니다. 1986년 파주군수시절 아버님은 아들이 화장캠페인을 하고 있는 동안에, 아버지는 선산 묘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셨어요. 그때 부자간에 심각한 불화가 3년간 지속되었죠. 노인네들은 완고하시기에 의식전환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내가 죽을 때도 매장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착각이죠. 아마 몇 년 내로 우리 국토 내에서 매장은 금지될 겁니다.

 

“ 대만 연수에서 돌아온 그는 1984년 경기도 교육원장 발령을 받는다. 당시 원장 특강 시간은 2시간이었는데 그중 30분을 장례에 대해서 특히 화장에 대한 강의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후 85년에는 경기도 가평군수로 발령을 받는다. 그곳에서도 그는 늘 그래왔듯 대대적인 장례문화 개선과 화장에 대한 캠페인을 벌인다. 하지만 가평은 당시 군 소재였던 만큼 다른 곳보다 아직 상당히 보수적인 농촌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온 젊은 군수가 겁도없이 들어 와 현실과 편함을 운운하며 < 화장 캠페인>을 벌이자 그는 졸지에 '상놈의 자식'이 되어 버렸다. 노인 분들에겐 조상도 어른도 몰라보는 새파란 어린것이라며 욕도 배부를 만큼 많이 얻어 먹었다. 그래도 도시라면 비난이 좀 덜 했을 텐데.. 묘지나 땅 걱정이 없는 농촌이라 그 비난 강도는 더 심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나름대로 꿈쩍 않고 자진해 화장 전도사 가 되었고 나중에는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후 1986년 신시장은 다시 파주군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파주는 광탄면 용미리에 서울시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 글쎄요? 그래서 그런지 주민들은 묘지에 'ㅁ' 자만 나와도 신물나 하더라구요. 넌더리를 쳤어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우니 화장을 설득하려면 또 쉽지 않겠구나 생각 했죠. 그래서 나름대로 가장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말을 풀어 갈 수 있는 방법도 연구했습니다. 그런데요? 그게요.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워낙 매장에 데있었던 사람들이라 <화장>에 오히려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저런 방법도 있었나..하는 눈빛으로요. 그래서인지 파주에서는 장례문화개선 운동을 해도 욕을 덜 먹었어요. 전 '이때가 기회다.' 싶어 한 단계 높여 당시 화장을 원하는 사람에게77,000원의 조의금 을 주기고 했죠. 당시 벽제 화장 수수료가 7,000원 이었고 관 운반비가 70,000원 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제동이 걸렸어요. 경기도 예산지침에 없는 항목이라는 이유로 삭제 당한거죠. 하지만 나는 군수직을 걸고 규제위반으로라도 계속적으로 집행을 감행했습니다.

 

그후 제가 떠나오면서 마음 아픈 일이지만 후임 군수로 인해 중단이 되었죠. 그 자리를 벗어나 제가 이래라 저래라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로써 신중대 시장이 그토록 사명감으로 해 왔던 일들을 포기한 것일까? “ 그럴 수 없었죠. 이건 처음부터 명분을 위해서나 어떤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정말 제 심중 깊숙히 정말 나라를 위해 내가 있는 자리에 서 할 수 잇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 바가 있기에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후 군포시장으로 자리를 옮겼죠. 계속 꾸준히 캠페인을 펼쳐 나갔습니다. 의정부 시장을 하면서두요.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벽제 화장터로 견학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는 벽제화장터에서도 의정부시에서 견학왔다하면 특강까지 마련하는 성의도 보여 줬죠. 부천시 부시장으로 발령이 나고 전 그때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장례 일은 보건복지부 소관이기에 만약 내무부 국장으로 가게 되면 이 일을 할 수가 없게 되니까요..

 

시간은 흐르고 장례법률은 개정이 안되고.... 일개 부시장이 법령개정도 안 된 것을 실행해봤자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온 캠페인으로는 아직 인식이 부족하고...만약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 이 일이 더 힘들어 질테니까요. 그래서 96년 2월, 여성계 대표들을 대상으로 화장공동유언장 성명과 벽제화장터와 서울시 공동묘지를 견학하는 일정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내심 큰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35명의 여성계 대표들이 전혀 호응하지 않거나 서명하더라도 현직 부시장이 역점을 두고하는 운동이니까 혹시 강요에 의한 서명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올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이 분들께서 취지에 적극 이해해주시고 전폭적인 호응을 해주셨습니다. 35명중 34명이 서명에 동참했던 것입니다.저는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고 바로 KBS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더군요. 그후 일본 NHK방송국에서도 취재요청이 왔습니다. 그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김치운 이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고건 시장도 장례문화 개선운동의 취지에 전폭적으로 동감하고 화장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며 직원 두명을 보내 자료협조를 요청해왔습니다.

 

98년 9월28일 안양으로 온지 얼마 안돼서 범국민 장례문화개선 위원회가 발족되는데 발기위원으로 위촉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구요. 현재 안양시의 화장률은 31%로 높습니다. 서명한 인원은 3,254명이구요. 물론 제가 직접 교육하고 설득했습니다. 특히 민방위나 여성단체는 직접 강의했죠. 제가 7대종손이고 가만히만 있으면 가장 양지바른 곳에 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들도 생각하는 바가 있을 테니까요. 전 15년간 욕설을 들으며 이 일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고 지금은 납골당이 준비가 안됐기에 납골당이 완성이 되면 더욱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단계 절차를 밟아 내년 정도에는 착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현재 안양시청광장에는 지난 해 5월 11일짜로 시범가족납골모델하우스를 설치. 전시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바램을 털어놓는다. “ 저도 시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일은 사회 지도층이 먼저 솔선 수범해야 합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정의 최고 지도자가가 솔선 수범하고, 그리고 각분야별로 노력한다면 크게 확산될 것입니다. 실제 최종현 회장이 화장에 대한 유언을 한 후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습니다. 한 그룹 총수가 해도 그렇게 파장이 있는데 대통령이 했다고 해 보죠. 그 영향력은 아마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정말 이 나라를 살리는 두고 두고 남을 은혜의 선정이 될 겁니 다. 물론 국민들은 저절로 따라가게 돼 있는 거죠. 이와 함께 한쪽에선 경제능력이 있는 그룹들이 복지후생측면에서 그룹 내에 납골당을 설치하면 더 쉽게 확산될 수 있을 꺼구요. 이젠 현실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