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퇴장은 화장

정경균 교수(현 사단법인 한국장묘문화 개혁범국민협의회 이사)

 

“내 강의 노트가 오래되고 낡았으니 이제는 젊은이들이 강의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줘야죠.” 2년 전인 1998년, 당시 < 아름다운 퇴장 >으로 우리 사회는 물론 지도층에 커다란 센세 이션을 불어 일으키며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던 주인공. 당시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을 역임하고 있던 정경균 교수(64세)는 정년 2년을 남겨 두고 명예퇴직을 신청, 사회 지도층에 적쟎은 충격과 사회 정서에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공인으 로서 사회지도층 원로로서 아름다운 뒷모습을 선보인바 있다.

 

“ 바쁘신 것 같다.”고 말하자 정교수의 짧막한 대답 한마디. “ 아, 나요? 요즘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느라.., 남들도 준비시키구요. ” “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시느라 바쁘시다구요? “ “ 그래요. 그래서 실은 남들은 의아해했지만 실은 정년 퇴임도 당기면서 빨리 나온 진짜 이유는 그거예요. ”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털어놓은 정교수의 얘기는 대충 이랬다.

 

2년전 여름, 고건 시장과 정교수는 20년지기 친구 사이였다. 학교는 2년 후배지만 집도 바로 옆에 살고 교회도 같이 다녔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98년 8월말경쯤이었다. 그날도 교회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고건 시장이 급한 일이라며 정교수를 불렀다. 그리곤 대뜸 < 장묘문화개혁>에 대한 얘기를 기자들에게 해야 하는데 자료조사를 부탁해 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몇 차례 얘기해 봤지만 말해도 이 일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고. 아마 정교수의 전공이 보건 사회학이고 젊었을 때 우리 나라 가족계획 운동을 주관했던 경력이 있으니까 아마도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정교수 자신도 이 부분에 있어선 별로 관심이 없던 상태였다. 그렇게 부탁을 받아 갑작스레 떠맡게 된 일이었는데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분석을 하는 사이 정교수에게 생각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우리 나라 상황이 너무 심각했어요. 나 스스로가 먼저 문제의 심각성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됐죠. 한 마디로 너무 중요하고 엄청난 문제였는데... 더우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급한 사안이었어요. 이렇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난 뒤 고민 끝에 결국 나 스스로가 앞장서기로 다짐했죠. 누군가는 분명히 해야할 일이었으니까.. 사실 명퇴를 결정할 때 고민도 했어요. 아무런 문제없이 2년만 있으면 정년 퇴임에 동경대와 하와이대에서 교환교수 자리도 보장돼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여생을 내가 살아온 이 사회와 국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결국 이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로 하구 앞당겨 명퇴를 했죠. 원래 두 가지 일을 못하는 성격이라 이 일에만 전념해야겠구나 싶어서, 또 일이 평생 해 왔던 연구 못지 않게 정말 사회와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값어치 있는 일이다 싶었구요.

 

“ 정교수는 그렇게 자료를 모으다 중요성을 느끼고 모든 걸 포기했다. 평생 몸담아 온 학교까지... 그리고 9월 15일 정식으로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발기인 모임을 했다. 때마침 최종현 회장이 죽은 후 화장 유언이 있었고 이로 화장 자체가 사회적 관심을 끌 때였다. 정교수와 최회장은 시카고 대학 동기라 생전에도 몇차례 공식 석상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발기인 대회를 하고 9월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 총회를 개최했다. 이때부터 매스컴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이제 만 2년이 다 되가는데.. 한번도 후회 한 적 없어요. 오히려 그 중요성에 날마다 새롭구, 힘이 있는 한 이 일을 알리구 동참을 권유하죠. 왜냐면 정말 살길이니까“ 이어 정교수의 이야기는 자신이 모든 걸 포기하면서까지 시작한 이 일의 중요성으로 이어졌다. 현재 서울에서 하루에 사망하는 사람 수가 평균 110명. 전국적으로 보면 740명. 하지만 이 사람들이 묻힐 묘지는 한자리도 없는 게 현재 실제 상황이라는 것이다. 더우기 서울시민의 경우는 더하다. 말 그대로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화장할 수 있는 시설도 만만치 않다. 현재 서울에서 화장이 가능한 곳은 벽제 화장장뿐이다. 1천1백만이 사는 서울에 장묘 시설이 한 군데 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느끼는 황당함이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 우리는 현재 화장시설이 태부족해요. 화장운동을 펼쳐서 사람들이 화장을 하려고 벽제로 가는데 이곳 역시 포화 상태죠. 하루 평균 100구를 화장하는데 화장로 (화장 태우는 것)가 16기 밖에 없어. 한 사람 태우는데 2시간 걸리고 100구를 태우려면 1기가 6-7기를 태워야 하는데 기계도 무리지. 외국에서는 2기 이상을 절대 태우지 않거든. 근데 우린 14시간을 불을 때야 하니 기계도 버텨내기 힘들지. 새벽 5시 30에 시작하면 저녁 늦게까지 해야 하니 기계 뿐 아니라 그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죽을 맛이구요. “ 목소리 톤이 한층 올라간 정교수는 다시 이 일의 가장 큰 어려움을 이야기 한다.

 

“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 지역에선 절대 안 된다고들 반대만 하고 있으니.... 1,100만이 사는 서울에 장례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건 말도 안 되지. 하지만 서울시에서 하려고 하면 주민들의 반대보다 앞서서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구 의원들이 더 난리야. 모두 표 하나 더 얻으려는 거지.” 따라서 국민 의식, 특히 가진 자들이 먼저 의식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묘에는 이외에도 전통적인 문제가 함께 따른다. 우리 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유교에서는 화장을 법으로 금했던 것이다. 결국 이 운동은 600년 전통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고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곧 의식구조 를 바꾸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도 지도자가 본을 보이면 가능하다는 것이 정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의 예를 든다. “ 중국 같은 사회주의에서도 등소평이 매장을 법으로 금하고 먼저 실천을 보였어요. 그래서 지금 중국의 화장률은 100%예요.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거든. 그래서 강압적으로 할 수는 없죠. 결국 먼저 의식개혁 운동이 수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거죠.

 

“ 그러면서 그는 일전에 방문했던 프랑스 아파트 얘기를 들려준다. “ 파리에 갔을 때 놀란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파트예요. 블란서 파리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어딘지 아우? 우리 나라로 얘기하면 고급맨션 아파트겠지.. 놀라지 말아요. 바로 묘지에서 가까운 아파트예요. 참 이상하지요? 근데 그게 다 이유가 있더라구. 묘지에서 가까울수록 값이 비싼 이유는 자주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더군다나 배우자와 사별한 홀로된 노인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꽃을 들고 들른다니까...왜냐면 묘지가 묘지가 아니라 공원이니까...“ 처음엔 그도 이해가 안 갔지만 차근차근 생각해 보니까 이해가 가더란다. 그게 가능한 게 일단 우리 묘지에서 으시시한 분위기가 연상되는 것처럼 봉분이 있는 것도 아니구. 모두 화장을 했으니까 묘지가 모두 잔디밭만 있고 그저 평화로운 공원같았다. 한마디로 가족들이 늘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찾아가 얘기하고 함께 지난 추억도 나누고..힘들 땐 가서 푸념도 하고 그러는 휴식처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 우리 나라는 동네에 묘지는 커녕 화장장 하나만 들어선다고 해도 온 주민이 다 들고 일어서쟎아요? 왜냐면 말 그대로 공동묘지쟎아. 으시시하거든.. 그래서 우린 <청 평 가 자 운동!>을 벌이고 있지. 즉, 화장을 하면 청결하고, 평화롭고, 가까워서 자주 찾을 수 있다는 거지. 여러분, 우리 한번 같이 청평 가볼 생각 없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