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이 나는 사람들

김광식(공무원 (36세) /익산 화장장 근무)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어 ?“ “한번 다른 사람보다 먼저 해 본다고 생각해 봐 ! ” “야, 일이 없냐? 하필 젊은애가 시체 태우는 일을 하게? 그건 나이 든 사람들, 정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일 이라구.“ “그래 한번 해 봐라! ”

 

그가 처음 익산 화장장 근무를 제의 받고 고민할 때 주위에선 천차만별의 여러가지 반응을 보였다. “젊은애가 그런 일을 하느냐며 펄펄 뛰며 말리는 사람, 반대로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며 오히려 격려 해 주는 사람... ” 만 2년 전, 고압가스 자격증을 갖고 있던 그가 익산시 올림픽 기념 국민 생활관에서 근무 하던 당시, 익산시 공설 화장장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 왔다. 요즘 화장장 시설들은 고압 가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쉬운터였고 평소 맡은 일에 대해 성실과 최선을 다하던 그를 인정한 결과였다. 지금은 자리가 없어 임시직이지만 일단 오면 정규직으로 뽑아 주겠다는 것이었다.

 

오랜 동안 고민 끝에 그는 “ 세상엔 모두 하려고 하는 일도 있지만 남들이 안 하는 일,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뒤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 이런 일을 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보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2년 전 화장장 일을 시작했다. 김광일, 올해 36세, 현재 익산 화장장 근무. 근무 연수 2년, 지금까지 그가 화장한 시체는 약 1천 여구. 지금이야 어렴풋하게나마 화장 문화에 대해 여러모로 홍보가 되어 있지만 그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해도 이런 시설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게 사실이었다.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돼 보겠다는 의미 부여와 꿈을 갖고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후 그는 다시 한번 좌절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일을 하고 중간에 화장을 하러 온 가족들과 밥을 먹게 될 일이 생겼다. 그런데 가족들이 슬슬 그를 피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나중에야 그가 화장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때 그는 다시 한번 좌절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아버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도와주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그는 기가 막혔다. 아니 다 그만 두고 싶었다. 자기 가족들 시체도 그러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 하랴..

 

그렇게 며칠 후 근처 사회복지관에서 운구할 이도 없이 외롭게 살다간 시체 한구가 내려져 왔다. 스스로 운구해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그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 그래, 그렇게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가는 많은 사람들, 그들의 마지막 단계를 내가 책임져 줄 수 있구나. 내가 힘이 되어 줄 수 있구나... ” 그는 새삼 새로운 힘이 생겼다. 그리고 며칠 후 이장으로 묘지를 파게 됐을 때 묘지로 나무 뿌리와 갖가지 벌레들이 파고 들어 아수라장이 돼 있는 유골을 보면서 그는 화장이 얼마나 깨끗하고 좋은 문화인지 직접 보고 느끼게 됐다. 그리고 야외 그것도 명당이라는 이유로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해 눈이 오면 오는 데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이 모든 것들이 이유가 돼 죽은 이를 가까이 할 수 없는 우리 나라 매장 문화의 여러 가지 불편함들이 현장에서 직접 느껴졌다. 어찌 그뿐이랴.. 명절이면 명절이라 길이 막혀 좋은 인상 보단 귀챦다, 언제 다녀 오나하는 한숨부터 짓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언제부턴가 그는 스스로 화장 문화 애호가가 됐다.

 

이제 일도 해가 넘어 가면서 손에 익숙해 진터라 그는 화장하는 2시간동안 가족들과 우리 나라 장례 문화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는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그가 내리는 결론은 결국 <화장문화>임을 스스로는 안다. 그만큼 현장에서 화장이 얼마나 깔끔하고 약간의 여운을 남기는 듯 스스로 이미지 마무리를 위해서도 좋은지 그는 보아 왔다. 또 후손들과 나중에 만남을 위해서도 결국 그들이 찾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 또 이제 그들이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가족묘를 일일이 돌 볼 시간이 없어졌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말 한다.

 

살아 계실 때 좋은 이미지가 돌아가셔서 귀챦은 존재로 전락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언제까지나 늘 보고 싶은 이미지로, 늘 곁에 대화를 나누기 원하는 대상으로 남으려는 허영심이 사람들 마음속엔 모두 잠재해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화장 문화에 관한 그의 주장은 순전히 100퍼센트 현장에서 보고 듣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다. 그러기에 더 많은 이들에게 설득력을 갖는다. 왜냐면 그의 삶의 체험, 현장에서 작성된 결과 보고서니까. 그래서일까? 화장장에 따라온 가족들이나 친지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충분히 공감하며 후에 화장을 해야겠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1천여 구를 화장했다. 그리고 스스로 점차 화장률이 늘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 근 1년 새 10%정도 화장률이 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 하지만 죽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 산사람들의 느끼는 마음의 공간은 아직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선을 보러 나가면 잘 돼가다가도 하는 일 때문에 퇴짜 맡기가 일쑤거든요.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 결국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겠죠. 세상이 변화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