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문화, 이제 학문속으로

이필도(서울보건대학 장례지도과 교수)

 

“우리가 어린 시절 소풍을 '~능'으로 갔던 추억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보물찾기를 하고 뛰놀면서도 우린 그곳이 무섭지 않았죠. 왜냐면 말 그대로 나무와 뛰놀수 있는 동산, 휴식처였을뿐이니까요... 사실 누구도 무덤이라는 생각은 떠올리지 않고도 그저 쉴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혐오스럽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요. 단지 공원... 국립시설 공원일 뿐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묘지업자들이 붙여놓은 ~공원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 구기터널을 넘어 여성개발원 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발그레한 벽돌로 몇몇 운치 있는 건물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있다. 그중 한 건물 보건사회연구원에는 바로 장례 문화와 관련해 빠지지 않는 감초 같은 사람이 있다. 바로 이.필.도 박사. 이 바닥에서 내놓으라하는 화장 전도사들도 모두 첫 손에 꼽는 누구나 인정하는 화장전도사다. 일찍이 고대에서 농업 경제학을 전공했던 그가 어떻게 장례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일까?

 

“ 저는 처음 연구소 들어올 때 농촌 빈농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농어민 연금'이나 '농어민 의료보험'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됐죠.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연구원에서 가정의례비용을 산출하는 일을 하게 됐어요. 당시 가정의례 비용을 산출하다보니 자연 장례비용을 산출하게 되었고 장례관련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장례와 관련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장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죠. 전 97년에 실태 조사를 하면서 우리나라 산림이 묘지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이 돼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 저기 무질서하게 묘지가 서 있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우리 집안에도 묘지가 있습니다. 한번 성묘를 가려면 교통대란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죠. 한번은 아버지께 서울 근교로 묘지를 옮기자고 제안도 해 보았지만 묘지는 함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고 허락을 않으셨어요. 전 그때 처음으로 심각하게 과연 묘지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죠. 그 후 보호복지 제도 개혁부에서 1년간 근무하게 됐어요. 당시 규제개혁을 철폐하기 위해 여러 가지 손을 댔는데, 저는 묘지 문제에 대한 안건도 올렸죠. (묘지축소 , 무연고 묘지 정리 등)

 

그러나 이 부분은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할 부분이지 완화할 부분이 아니라며 연구과제로 돌려졌어요. 전 이 문제가 연구과제라기보다 실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우리 삶의 문제니까요. 사실 삶의 질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투자도 하고 시설도 만듭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죽음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민 의식의 대전환 이라는 전제에만 묶여 실천인식이 매우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전 시민 단체와 연계가 돼서 이 부분에 접근했습니다. 건전 장례모델을 제시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죠.“ 그 즈음 사회적으로 98년에 최종현 회장이 화장을 하면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되 기 시작했다. 또 이 즈음에 수도권 지역에 수해 피해로 인해 묘지가 떠내려가는 사건도 있었다. “ 머리를 다루는 미용사나 이발사도 국가가 인정하는 수준이 되어야 자격증을 받고 영업을 할 수 있죠. 그런데 사람의 죽음을 다루는 중요한 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장례서비스업은 전문적 직업인에 대한 자격증 제도도 없는 실정입니다. 정부에서는 97년부터 이 부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또한 장례업 만큼은 수요공급에 따른 시장경제 체제가 작용하지도 않구요. 연간 죽는 사람이 25만 명이예요. 하지만 여기에는 전혀 수요 공급 원칙이 없습니다. 왜냐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여기에 품질제도나 가격적인 면에서 기준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런 부분에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9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죠. “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 저도 처음에는 장례사업에 대해 우려하는 바도 많았습니다. 또 성균관대 유림들과의 마찰도 많았구요. 그들은 “당신이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받았지 집에서 죽은 사람을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게 하는 억지 주장을 하냐”고 내 의견을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분들도 서서히 동의하고 계십니다. 시대의 흐름에 의한 필요성때문이니까요... 그동안 연구를 하면서 아쉬운 점은 제가 사회학에 대한 전공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전 경제학을 공부했기에 실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장점이 더 있죠. 자칫 장례문화가 경제적으로 치우치다보면 우리 나라의 조상숭배 정신에 해가될 수 있습니다.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은 우리 나라가 가지고 있는 좋은 뿌리니까요.

 

“ 연구해 나가는 동안 이박사는 경제적인 문제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우린 언제부턴가 장례식에 가면 밤을 세우고 고스톱을 치죠 . 전 왜 이래야 하는지 의구 심을 갖게 됐어요. 제가 95년 장의 사업을 할 때의 일이예요. 소위 뼈대있는 집안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눈치를 살피며 아파트 곤도라에 관을 싣고, 병원지하 영안실에서 장례를 하는 것을 봤어요. 병원의 영안실은 대부분 지하에 바닥만 깔려 있어요. 이런 시설에서는 당연히 고스톱 치게 되죠. 남자들은 앉아서 고스톱 치고, 여자들은 남자들 술 심부름이나 하게 됩니다.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하면서 왜 장례식은 병원 영안실에서 해야 하는가. 이 의견이 받아 들여져서 당장에 장례식장을 만들 수는 없지만, 병원의 영안실을 개조해서 장례식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장례식장을 만들어 놓으니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고스톱 치거나 술 마시지 않고 정말 경건한 분위기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들 모두 좋아했어요. 더 나아가서 전문적인 장례식장을 만들기 위해 융자 사업을 실시했어요. 융자사업을 실시한 후 3,4년이 지나서 그것에 대한 평가도 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장례는 전통적 의식의 하나이기에 전혀 손을 댈 수 없는 그래서 연구를 할 대상 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가만히 예전의 장례를 들여다보면 지금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따라서 장례 문제는 경제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곧 우리의 장례문화나 죽음에 대한 인식, 그리고 가족제도 등 사회학적인 면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거죠. 사실 장례도 하나의 예식이니까요. 우리는 결혼은 예식이라고 하면서도 장례를 예식이라고 생각지는 않죠. 엄연히 '장례'도 '례'인데요. 그래서 이러한 의미부여를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 그는 이렇게 방안을 제시한다. “ 나는 화장이 옳다, 매장이 옳다 하는 식의 이분법적인 문제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묘지라도 잘 관리해서 가족이 모여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거죠. 또 장례라고 하면 좀 혐오적인 대상으로 생각하죠. 그러나 죽음의 문제는 나의 문제고 가족의 문제고 사회적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고 전문가도 없어요. 이 부분은 산업 경제적 측면보다 사회문화, 특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는 바뀌더라도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우리의 뿌리로써 지켜가야 한다고 봅니다. 혹자는 화장을 하는 것이 우리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하는 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관심을 갖고 많은 분이 함께 계속 연구를 해야 합니다. 장례문화가 변화되는 모습은 의식이나 종교, 문화에서처럼 획기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서서히 변화되어야 하며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내가 한 점을 찍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을 뿐이죠. 이 일은 인류학, 사회학 등 문화 인류학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장례법 개정에 있어서 작년부터 올해에 넘어오는 과정에서 이 부분은 한마디로 소리 없는 문화의 개혁이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의 뿌리 속 깊이 들어가 서서히 변화하는 개혁이 되리라 본다. 지금까지는 장례에서부터 시작해서 묘에 가기까지를 연구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성묘에 대한 부분까지 연구해 볼 대상으로 삼을 계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