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행 1(알링톤 국립묘지 편) - "이등병이나 장군이나 똑 같은 혜택을 받는다."

미국 자유와 평등의 나라, 이 나라는 국민 누구나 국가로부터 똑 같은 혜택을 받는다. 우리일행이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했을 때 마침 그곳에서는 참전군인들의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고대 로마의 경기장을 닮은 고전풍의 행사장에 모인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 그리고 휠체어와 의족 등에 몸을 의지한 상이용사까지 어느 누구도 계급의 차별을 느낄 수가 없었고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하였다는 보람과 긍지를 얼굴 가득히 담고 있는 것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미국의 특징이자 미국 국립묘지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는 알링턴을 비롯하여 100여개의 국립묘지를 설치하여 관리 중에 있는데 그 중 미국방부에서 직접관리하는 곳은 알링턴 뿐이며 다른 곳은 국가를 대신하여 재향군인회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알링턴 국립묘지의 중앙부

 

알링톤 국립 묘지의 기원은 남북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00에이커의 알링톤 농장을 상속한 메리여사는 1831년 젊은 군장교인 Robert E. Lee와 결혼하여 알링톤에서 살았다. 1861년 남북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자 Lee는 그의 고향인 버지니아에 맞서 싸울 수가 없어 관직을 그만두고 알링턴을 떠나게 된다. 1864년 5월 미국정부는 알링톤에 부과된 92.7달러의 재산세를 내기 않았다는 이유로 알링턴과 주위토지를 몰수하여 연방정부의 소유가 되었다. 북부연방군의 본부였던 알링톤 주변을 국립묘지로 결정하여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매장하기 시작했고,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 알링턴의 완만한 구릉은 만6,000여명의 군인들의 묘지로 뒤덮이게되었다.(알링턴국립묘지 안내책자에서). 언덕위에 있는 Lee가족이 살았던 그 집은 현재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묘비들 알링턴 국립묘지를 비롯한 미국국립묘지의 가장 큰 특징은 사병·장교·장군이나 대통령 등 신분이나 계급에 차등을 두지 않는 다는 점이다. 국가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나 똑 같은 5피트×10피트(약1.3평)의 묘지면적이 할애되며, 비석도 4인치×13인치×42인치 크기의 대리석을 제공하여 준다. 신분에 따라 별도의 매장구역도 정하지 않고 묘지 사용순서에 따라 장소가 지정될 뿐이다. 여기에 미국의 국립묘지에는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경제적인 여력이 있는 사람은 정부에서 정한 규격의 비석을 반납하고 좀더 폭이 크고 화려한 비석을 자기부담으로 세울 수가 있는데 그 높이만큼은 국가에서 정한 13피트를 벗어날 수가 없다. 바꾸어 말하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죽음은 모두 고귀하므로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한 평등원칙은 철저하게 지켜 나가되 각 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존중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 국가의 명예를 드높인 민간인들의 죽음도 이 곳에 같이하여 미국민들의 추모의 대상이고 있다는 점이다. 19세기의 개척자에서부터 20세기의 우주 탐험가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미국 개척의 역사를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1869년에 최초로 그랜드 캐년을 탐험한 John Wesley Powell, 지구의 양극지방을 탐험했던 Robert E. Peary와 Richard Byrd, 1986년 챌린저호가 폭발할 때 죽은 오늘날의 우주 탐험가 Dick Scobee와 Micheal Smith는 물론 미국의 복싱영웅으로 헤비급 세계챔피언을 오랫동안 지킨 Joe Louis, 또 야구를 처음으로 고안한 Abner Douleday 등등..... 이런 점들을 우리 나라의 국립묘지가 군인중심이며, 계급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철저한 획일주의와 비교할 때 다소 생소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한편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국립묘지의 가장 상징적인 곳은 어느 대통령의 묘도 전쟁영웅의 묘도 아닌 네명의 무명용사의 무덤(탑)이다. 하얀색의 석관아래의 이름 모를 전사자는 1921년 11월11일에 묻혔고, 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의 이름 없는 전사자들은 1958년 5월 30일, 교회당 지하묘소 앞에 잠들었으며, 베트남 전에서의 무명 전사자들도 1984년 기념의 날(우리의 현충일)에 이 곳이 안장되었다. 이 곳은 The Old Guard라고 불리는 미국 3번째 보병부대의 병사들이 24시간 지키고 있다. 그 군인들은 이 묘지를 지키는 영예를 얻기 위해서는 몇 달여 간의 고된 훈련과 교육을 받아야 하며 엄격한 규율을 따라야 한다.

 

무명용사 묘의 보초교대를 보기위해 모인 관람객 묘지를 지키는 보초들은 묘지를 향하기 전에 21회의 걸음을 21초 동안 걸어야 하는데 이것은 미국의 군대에서 최고의 존경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국가원수에 대하여 21개의 총이나 21발의 예포로 예를 표하는 것과 같은 예의의 표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보초의 교대의식은 동절기인 10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는 매시간, 하절기인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는 30분마다 행하여지는데 비록 3사람만이 진행하는 의식이지만 그 엄숙한 교체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의 무덤은 미 국민은 물론 세계도처에서 찾아오는 관람객들이 반드시 돌아보는 곳으로 꺼지지 않는 불과 끊이지 않는 물로 상징되는 기념물이 참배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 묘역에는 두 아이의 무덤과 함께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했던 재클린여사가 나란히 잠들고 있는데 대통령과 이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 잠들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위로부터 묘지내의 기념식장 중간 존 F 케네디 대통령 묘소 아래 로버트 케네디 장관의 묘소 케네디 대통령의 묘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해 보기로 한다. 1994년 9월 우리 일행이 미국 워싱턴을 찾았을 때 안내를 맡아 주었던 아르바이트 유학생이 워싱턴 교민사회에 회자하고 있는 아주 기발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우리 나라에서 한참 해외여행 붐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한 할머님께서 워싱턴 관광을 오셨는데 이 할머니께서 백악관을 관광하시던 중 텔리비젼에서 보던 미국의 대궐(?)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어 그만 일행에서 이탈하셨다고 한다. 한참만에 주위를 돌아보니 국제미아가 되어버린 이 할머님께서 그래도 기지를 발휘하여 경찰을 찾아가 국제공용어인 몸짓 손짓 발짓을 총 동원하여 자기일행이 케네디 대통령의 묘지를 보러갔다는 것은 설명하려고 케네디 대통령이 죽었다는 뜻을 알리기 위해 "케네디 캑!" "케네디 캑!"하며 쓰러지는 시늉을 하였다고 한다. 친절하기로 소문난 워싱턴경찰이 케네디라는 말만을 알아듣고는 순찰차에 할머니를 태우고 사이렌을 울리면서 먼저 케네디 기념관으로 모시고 갔으나 이 할머니 여기가 아니라고 손을 내 젖고는 또 "케네디 캑!"을 왜처댔다는 것, 그제야 할머니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한 워싱턴 경찰아저씨들 알링턴묘지로 차로 몰아 케네디 대통령묘역을 관람하던 일행을 찾아 할머니를 인계하였다는 것. 그 이후 이 할머니는 "영어가 별것이 아니더라"고 의기양양해 지셨고, 별명마저「케네디할머니」로 바뀌고 일약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한 우리들을 놀라게 한 것은 정문 좌측에 자리잡고 있는 납골당이었다. 알링턴의 옥외형 벽식납골 시설 "아! 미국의 국립묘지에 납골당이 있다니" 모두를 탄복하게 한 그 납골당은 콘크리트를 사용하였으면서도 표면을 아주 매끄럽고 정교하게 시공되어 있고, 묘비와 마찬가지로 흰 대리석판으로 된 명패를 겸한 뚜껑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미국에 출장 오면서 국고를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이 것을 보고 나니 근심을 덜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부러움을 안겨준 소박하면서도 품위있는 옥외형 벽식납골시설은 좌우를 나란히 대칭시킨 배치를 하고 있었고, 정원 한 가운데 있는 자그만 분수는 어쩌면 동양의 풍수지리를 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잘 정돈된 묘역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담한 납골공간 - 큰 땅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며 설치비용도 많이 들 것 같지 않은 바로 이런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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