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기행1(뻬르라쉐즈) - 죽음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도시 파리

죽음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도시 파리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 파리, 그곳에는 세계적인 묘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묘지에 있는 묘들은 하나같이 조각품으로 품위 있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고, 푸른 나무들이 우거져 도심 속의 허파 구실을 하고 있다. 묘지 안 나무 그늘의 벤치에는 노인들이 한가롭게 독서를 하거나 사색에 잠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가 있다.

 

뻬르라쉐즈 묘지의 가을 이런 파리의 묘지 모습은 여기뿐만 아 니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며 이와 같은 유럽의 묘지문화는 그들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흔히 유럽 즉 서구문화는 이집트와 메스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하여 고대 그리스·로마를 거쳐 중세기독교 사회로 이행해 갔고, 현대 서구문명은 중세기독교 문화의 연장선에서 찬란히 꽃 피우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다보니 유럽의 장례문화는 기독교의 부활사상 즉 죽음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이고, 언젠가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가야하기 때문에 육신을 보존(매장)하여 부활의 때를 기다린다는 생각이 짙게 배어있다.

 

이러한 정신 바탕 위에 중세부터 유럽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매장의 전통이 이어져 교회묘지가 발달하여 왔다. 흔히 교회 뒤뜰이나 지하실, 심지어 교회나 성당내부에 까지 묘지들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영주나 귀족 등 유력자들은 장원이나 성의 일부에 독자적인 납골당 - 청년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명성을 일시에 떨치게 한 '몬테규家와 캐플렛家의 갈등 속에서 못다 피우고 숨져간 두 젊은이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대표작「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집안의 강제결혼을 피하기 위해 비약을 먹고 가사상태로 안치되어 있던 줄리엣을 보고 로미오가 자살하던 곳이 바로 줄리엣의 가문 캐플렛가의 납골당('실내묘소'라고 부르기도 하며, 영어로는 Columbarium 또는 Charnel house, 프랑스어로는 Colombarium)이다 - 을 설치하여 사자들을 산사람들이 숨쉬고 살아가는 곳에 가까이 두었다.

 

까보그림 프랑스묘지를 특성별로 살펴보면 까보(Caveau)와 앙프(Enfeux)로 대별할 수 있다. 프랑스 묘지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까보는 단독주택형 가족 집단묘라고 볼 수 있는데 기원전부터 가족의 유골을 한 장소에 밀집시켜 보관하던 관습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지하에 작은 방 구조로 된 것이다. 이 까보 위 뚜껑돌에 다양한 조각을 설치한 곳이 많고 아담한 집을 세워 둔 것도 있다. 까보는 땅의 수평적인 소비를 막고 한곳에 모든 가족이 모이는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앙프는 지중해지방, 특히 이태리, 스페인 그리고 남불의 니스, 마르세이유 지방에서 널리 이용된 것으로서 지질적인 문제로 지하에 매장하기 어려운 지방에서 발생한 독특한 묘형태이다. 연립주택(APT)형으로 지상에 설치하여 대단위로 시신을 안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앙프를 한 단계 더 질적으로 개선하고 형태를 발전시킨 것이 근래 미국 서부지방에서 모셜리움(Mausoleum, 靈廟라고 번역하고 있다)이라는 이름으 로 다양하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이 지역은 한때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어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 로 보인다.)

 

 

 

 

 

 

 

 

 

앙프의 모습

파리의 묘지역사를 살펴보면 프랑스 대혁명이후 묘지정책분야의 대개혁으로 파리의 도시 내에 있던 성당을 중심으로 산재하여 있던 200여개의 묘지들을 과감히 폐지하였다. 파리사람들의 묘지 안내 책 표지이때 이 묘지에서 나온 유골들을 안치한 곳이 파리시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까타꼼브(Catacombes)인데 이곳에 대하여는 뒤에 따로 설명하기로 한다.

 

도시내 묘지를 폐지함에 따라 당시 파리 셴(Seine) 도지사 Frochot는 파리성곽 바로 바깥에 3대 묘지를 설치하였는데 '사후에 모든 시민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현대묘지의 신개념인 '도시의 정원묘지'를 창출해 나갔다. 이 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1804년의 뻬르라쉐즈(Pere-Lachaise)묘지로 이것을 시 작으로 1824년에는 몽 빠르나스(Mont Parnasse)묘지, 1825년에는 몽 마르뜨르(Mont Martre)묘지가 문을 열었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규모의 묘지들이 확대 설치되어 20세기말 파리시내에는 19개의 묘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파리의 묘지를 가장 잘 소개하고 있는 것은「파리사람들의 묘지안내(GUIDE DES CIMETI RES PARISIENS)」라는 책으로서 이를 발간하여 외국 관광객들에게까지 자랑스럽게 팔고있는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파리지의 묘지 배치 지도  

 

 

 

 

 

 

 

 

장황한 역사와 유래 설명은 이쯤에서 접고 파리의 대표적인 묘지로서 박물관묘지로 지정되어 박물관 대접을 받는「뻬르라쉐즈묘지」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 묘지에 도착하였을 때 2m이상 되는 높은 벽돌담장으로 둘 러싸인 모습과 묘지입구에는 주차할 공간이 전혀 없는 점이 우리에게 다소 어두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묘지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뻬르라쉐즈 묘지의 정문푸른 나무들과 비교적 넓게 잘 구획된 도로, 그리고 하나도 비슷한 모습을 찾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형태의 묘지들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모습은 나에게 하나의 문화적인 충격으로 받아드려졌다. 일본·미국의 묘지와 납골당도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그냥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유하는 가까우면서도 편리한 그런 생활공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 을 뿐이었다. 그 반면에 파리의 묘지들은 곳곳이 예술성이 짙은 조각품과 중세풍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음치미치로서 예술적인 감각이 아둔한 나에게 '과연 이곳이 묘지라고 말해야 할지, 야외 미술관이나 조각 공원이라고 해야할지' 도무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촌닭을 읍내 장에 내 놓은 듯 잔뜩 기가 질린 상태로 묘지 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보았 다. 여기는 조각품 저기는 동상 그리고 석상, 무언가 형상을 분별할 수 없는 기기묘묘한 추상적 형태의 묘비며 묘석들. 또 아담하게 잘 지어진 묘지집(?)이랄까 좌우간 그런 건축 물들 그 중 어떤 곳은 드라큘라가 금방 걸어나올 것만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 묘지 안에 자리한 화장장은 그 건물 자 뻬르라쉐즈의 화장장 체가 예술적이었다. 회랑식으로 지어진 납골당이 ㄷ자로 둘러싸고 있는 이 화장장에서 우리들이 묘지를 둘러보고 있을 때 굴뚝에서 검은 연기를 솔솔 내뿜고 있었다. 아니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 파리시내 한복판에 있는 화장장 굴뚝에서 연기를 내놓고 있다니‥‥ 정말 기가 막혔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를 안내하던 파리 소르본느대학의 홍석기박사에게 "도심 화장장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어도 괜찮은가"하고 물어보았다. "법에서 허용한 범위 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요" "디젤자동차가 시동 걸 때 약간 검은 연기를 내뿜듯 프랑스 화장장에서는 가끔 저런 모습을 본다"고 태연스레 답했다.

 

화장장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식 납골당 

 

그러나 우리는 화장장 내부를 전혀 둘러볼 수가 없었다. '내부를 둘러보아도 좋은가'하고 허락을 청했을 때 관리사무실에서는 '화장이 진행중이고 유족들이 있어 아무도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는 답변이 바로 나왔는데 '이것은 철저한 이용자 중심의 운영시스템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이번 여행 중 영국에서는 출발전에 미리 묘지를 둘러보겠다고 사전 승낙을 받았음에도 예측도 할 수 없는 장례를 이유로 이억만리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그것도 공무원들로 구성된)을 묘지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게 하고 입구에서 쫓아내듯 입장을 거절당한 경험을 한바 있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고엽(故葉)」이라는 샹숑으로 유명한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배우이자 가수인 이브몽땅은 우리 나라에도 그를 기억하는 올드펜들이 많이 있다. 영화배우로서 이름을 날린 이브몽땅은 한때 프랑스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될 만큼 사회적 명예와 부를 누렸으나 그의 묘소는 다른 묘지들에 비세계인들이 자주 찾는 이브몽땅의 묘 하여 예술적으로 뛰어난 조각품으로 장식된 것도 아니고 주변의 여느 것과 다를 바 없이 검소하기만 하다. 가로 0.8m에 세로 1.6m 크기로 반 평도 채 안 되는 묘역에 높이 30cm가량의 화강암 평석으로 덮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묘석 위에는 항상 손바닥만한 화분들이 놓여 장미, 백합, 진달래 같은 꽃들이 색색이 피어 있고 "시간은 흐르나 추억은 남는다"라는 추모의 글이 묘석에 새겨 있어 불멸의 인기인을 기리고 있다. 그런 그가 유명한 여배우 시몬 시뇨례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는 사실까지도 많이들 기억하고 있으나 그들이 뻬르라쉐즈묘지의 한 무덤 속에 같이 잠들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죽은 다음에 다시 결합(?)한 것일까? 그저 평범한 무덤일 뿐임에도 그들이 잠들고 있는 곳은 파리를 찾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한번쯤은 찾는 관광명소 로 알려져 있었다. 언제나 추모객들이 바친 아름다운 꽃들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그의 묘가 세간의 관심으로 떠 오른 적이 있었다. 이브몽땅이 안느 드로사르라고 하는 여배우와 과거 한 때 사귀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의 딸인 오로르를 이브몽땅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통에 생전부터 친자확인 소송에 휘말렸고 법원의 명령에 따라 유전자 감식을 받게 되었으나 감식을 받기 3일전 그는 타계하고 말았다. 세상에서는 죽은 사람의 인격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법원에서는 그 시신을 들어내 감식을 하라고 냉혹하게 명령한다. 그래서 죽은 뒤에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시신을 세상 밖으로 들어내 유전자 감식을 받게 되었는데 DNA감식결과는 친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한다. 이 사건을 보면서 언젠가 필연적으로 죽음 앞에 서야 하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또 한곳 요상한 무덤을 소개해 보기로 하자. 빅또르 노이(Victor Noir)라는 젊은이는 파리에서 소문난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그가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그의 가족들은 그를 생전의 모습 그대로 청동상으로 제작하여 묘석 빅또르노이의 무덤 위에 눕혀 놓았다. 그런데 이 무덤을 참배하고 남성의 상징을 만지면 불임을 치료할 수 있다는 해괴한 소문이 파리시내에 떠돌아 이 동상은 이 곳을 찾는 여성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엄청난 손길들 때문에 반질반질 달아져 빛나기까지 하는데 우리가 찾았을 때는 이미 많이 달아 그의 형체를 잃고 있었다. 그런데 참배한 여성들은 짓궂게도 꽃을 남성의 심볼 위에 올려놓거나 가랑이 사이에 두고 가니 서양여성들의 속내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이곳을 꼭 가보아야 한다고 우리를 안내하던 홍박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쇼팽, 짐 모리슨, 마르셸 푸르스트, 에디트 피아프 등 뻬르라쉐즈 묘지에는 우리 나라 사 람들도 익히 알만한 유명인사들이 참 많이 잠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 것은 이름 없는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남편이 죽은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매일 아침 남 편의 묘를 청소하기 위해 양동이에 걸레와 빗자루를 담아와 묘지 주변을 청소하고 뚜껑돌 을 정성껏 쓸고 닦는 주름 성성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진정한 부부애를 느낄 수가 있었다.

 

 

무연묘지에서 나온 유골을 안치해 둔 곳 가까운 곳에 두고 언제 어느 때나 찾아오는 이들의 성묘문화에 비기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산 속 차가운 땅속에 부모형제를 묻어 두고 일년에 두어 번 명절 때가 오면 남들이 성묘를 가니까 나도 의무적으로 가야한다는 식의 건성 성묘는 아닌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과연 누가 진정으로 가족들을 사랑하였는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에서 맨 먼저 문을 연 공설묘지는 파리 제20구 초입에 있는 뻬르라쉐즈 묘지로 1804년부터 파리시민의 유택지로 애용되고 있다. 나무가 우거진 야산 0.42평방km에 영국식 정원개념을 살려 조성한 이 묘지는 세계 최고의 근대식 묘지답게 파리시민이 가장 많이 묻힌 프랑스의 대표적 집단묘지이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도로와 그 사이사이에 실핏줄처럼 난 도로사이에 97개의 크고 작은 분묘단지가 구획되어 있는데 총 10여만개의 분양묘소에 50만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무연고 묘의 재사용으로 지금도 제20구에 거주하는 파리쟝의 유택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뻬르라쉐즈 묘지는 프랑스 건축가「부로니야르」가 최초의 정원식 묘지로 설계한 사실로도 유명해 이후 유럽 각국과 미국에 선보인 공원식 묘지의 효시가 되었다. 최초의 공원식 묘지 답게 프랑스 정부로부터 박물관으로 지정돼 문화재 대접을 받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에게 항 상 무료로 개방돼 햇볕이 좋은 날이면 묘지 곳곳에 심어진 수목아래 벤치에 산책 나온 주민 들이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기는 공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 파리쟝의 묘지안내 책 중에서 -

 

앞서 소개한바 있는 까타꼼브를 소개해 보기로 하자. 이 지하묘지에 들어서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눈을 의심하게 된다. 이 지하동굴의 유골 앞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경구가 붙어있다 "당신도 언젠가 이렇게 된다" 그리고 동굴 속 양측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엄청난 인골을 보는 순간 킬링필드가 떠오를 것이다. 세계최대의 지하동굴무덤은 파리시 남부 몽파르나스 묘지 남쪽에 있는 당페르로쉬로(Denfert -Rochereau)라는 이름의 전철역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로마시대부터 채석장이었고, 제2차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의 본거지로 사용되었던 지하채석장의 인공 지하동굴을 이용하여 프랑스의 건축가 귀이오모(Guillaumot)가 로마식의 지하무덤을 본따 지하 장례장소와 유골저장소로 설계하여 1780년에 완공하였다. 그 크기는 11,000㎡(3천3백여평)를 벽으로 막아 공간을 정비하고 1,700m의 유골안치용 갤러리를 만든 어머어마한 규모이다.

 

이 곳의 유래를 살펴보면 파리가 5세기 이후 도시화되면서 교회묘지 이외에도 공동묘지가 여기저기 형성되어 18세기초에는 파리시내에 200여개소의 집단묘지가 난립하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정부에서는 국민보건과 도시계획차원에서 '묘지설치와 관리에 관 한 대개혁령'을 내리고 파리외곽에 뻬르라쉐즈묘지를 비롯한 3개소의 대형 공설묘지를 설 치하는 대신 기존묘지는 대부분 폐쇄했다. 이때 폐지된 600여만기의 묘지에서 나온 연고가 없는 유골 800여만개(일설에는 600여만 개)를 모아 길이 1.7㎞ 동굴 양측에 마치 장작을 쌓듯 차곡차곡 쌓아놓은 모양으로 안치되어 있다. 파리 당국이 이 뼈들을 이곳으로 옮기는 데만도 100년이 걸렸다고 하니 기가 질릴 지경이다. 유래가 어떻든 이 동굴은 프랑스 정부에 의하여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시내 국민학생들의 필수적인 견학코스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의 손꼽히는 방문 지로 자리잡았다.

우리들이 들렀을 때에도 세계 각처에서 온 피부색이 다른 많은 이들이 호기심과 두려움 이 뒤섞인 표정으로 아주 조용히 숨막힐 듯한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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