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개혁 - 우리는 이렇게(한겨례)

대구① 올해 화장건수 갑절로 늘어 제2납골당에 가족묘
광주② '화장 거부감' 두터운 벽 천천히 꾸준히 허물 터
광주① 화장률 20%, 갈 길 멀죠? 새 화장장으로 대변신

부산③ 화장뒤 안치까지 3시간 음식은 상조회사에 맡겨
부산② 빈소·화장·납골까지 장례 모두 책임진다
부산① 주민반대 호평으로 바꾼 첨단 무공해 화장장
전주시 화장문화 조기정착 다양한 시책 내놔
서울③ 3평 남짓 공간 납골함 빼곡 조명·장식 안락함

서울② 강서구 "혐오시설 반대' 벽 부닥친 제2화장장
서울① 벽제는 새벽부터 장사진 납골당도 내년초 '매진'
제주 "도민 89% 관행바꾸자" 광역납골당 건립
의정부 "더 매장할 곳이 없다" 납골당 모범
안양① '민방위교육서 화장 권유 시청사엔 시범 납골묘'
대전② "음산한 분위기 떨쳐야" 건축비 곱절들여 고급화
대전① 전시장·시범단지등 조성 납골묘 보급확산에 주력
손씨 율동문중-"후손 편하고 국토 지키고" 문중 앞장서 납골묘

 

제주 "도민 89% 관행바꾸자" 광역납골당 건립

제주지역의 지난해 화장률은 9.4%. 전국 평균(30%)과도 너무 차이가 나는 최하위다.

이 지역이 전통적으로 매장 중심의 장묘 관행이 완강한 탓이다. 조선시대 때 유배왔던 관료·지식인들이 매장 문화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유교사상을 널리 퍼뜨린 것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남의 땅이라도 이른바 `명당 자리'면 무조건 무덤을 쓰는 풍속이 일부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경작지 안에 조성된 묘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런 탓에 묘지 면적이 725만여평으로 추정되는 이 지역은 사설묘지 면적이 공설묘지 면적에 비해 5배나 넓다.

이렇게 매장 관행이 완강한 제주 지역이지만 자연경관 훼손과 토지잠식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장묘문화에 대한 의식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도가 올해 들어 도민 1479명을 대상으로 장묘문화에 관한 의식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9%가 매장 위주의 장묘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48.1%가 화장을 하겠다고 대답했고, 29.8%는 매장을, 22%는 어느쪽이든 관계없다고 답변했다.

현재 제주지역에는 지난 78, 82년 각각 설치된 화장장과 납골당이 1곳씩 있으나 시설은 아주 열악하다. 지난해 말까지 제주시 화장장에서 처리한 주검은 모두 3318구. 5000기를 안치할 수 있는 제주시 납골당에 안치된 유해는 현재까지 모두 610기로 시설 설치기간에 비해 사용율이 아주 낮은 편이다.

도는 화장·납골시설이 나빠 주민들로부터 혐오감을 일으키고, 이용과 접근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내년에 국비 지원 등을 받아 낡은 화장장 시설을 현대화된 시설로 증·개축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 오는 2004년까지 공원처럼 시민들의 접근이 쉽도록 광역 납골당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제주/허호준 기자hojoon@hani.co.kr

의정부 "더 매장할 곳이 없다" 납골당 모범

지난 6월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영모 장려금을 지급해 화제를 모았던 경기도 의정부시(시장 김기형)가 대규모 납골당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시는 최근 포천군으로 연결되는 자일동 축석고개 현충탑 바로 옆 5만여평의 터에 화장장과 납골당을 설치하기로 하고 이곳을 도시계획상 묘지공원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1개 시립묘지와 4개 공설공원묘지를 운영하고 있는 시는 이곳이 모두 만장이 돼 근처 양주와 포천군 등으로 매장할 곳을 찾아 나서는 주민들이 잇따르자 매장 위주의 장묘문화를 화장으로 바꿀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의정부시는 지난 6월21일 전국 최초로 `의정부시 영모 장려금 지급 조례'를 만들어 화장 1구당 10만원, 가족 단위 납골묘지 설치 때 20만원의 장려금을 직계 존비속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관내 5개 병원 영안실에 영모장려금 안내판을 내걸고 화장을 적극 유도해 온 시는 이날 현재까지 120명의 화장 신청을 받아 1200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했다.

김호득(41) 사회복지과장은 “장려금 지급을 실시한 뒤 전국 각 자치단체에서도 잇따라 장려금을 책정하는 등 장묘문화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며 “더 이상 매장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시로서는 화장을 권장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조례상으로는 매장된 사체를 화장하는 경우 영모 장려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장려금 지급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3만여기 정도를 안치할 수 있는 납골당을 2003년 완공하면서 주민복지시설을 함께 유치해 시민들이 친숙하게 드나들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차한필 기자hanphill@hani.co.kr

안양① '민방위교육서 화장 권유 시청사엔 시범 납골묘'

“아니, 시 청사 안에 웬 납골묘….”

시청 민원실을 찾아 안양시 청사 안에 들어선 민원인들은 2기의 시범 가족 납골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지난달 29일 설치된 이 납골묘는 매장 중심의 장묘관행을 개선하려는 시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설물이다.

시가 최근 장의사협회를 통해 조사한 지난해 시의 화장률은 31%. 이는 지난 88년 16%, 93년 24%에 비해 적지 않게 늘어난 수치다. 반면 시립청계공동묘지 매장률은 88년 24%에서 93년 18%, 지난해는 14%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매장 위주의 장묘문화가 이제 화장 중심의 관행으로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묘지난도 한몫했다. 안양시 공원묘지는 이미 만장이 됐으며, 의왕시 청계동에 있는 시립청계공동묘지는 7~8년 뒤면 포화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장묘문화를 개선하려는 안양시의 의지다.

시는 지난해부터 '화장 공동유언장 서명 날인등록제'를 도입해 서명한 시민들에게 화장유언 서약 등록증을 주고 있다. 현재 사회단체 137명, 시민 346명, 민방위교육 대상자 995명, 공무원 987명 등 모두 3011명이 화장 서약을 했다.

민방위 교육장은 시민들의 화장유언 서약을 유도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신중대 안양시장은 이 때 만큼은 맹렬한 `화장 전도사'로 변신한다. 지난 80년 대만에 갔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원묘지에 묻힌 뒤 7년이 지나 모두 화장돼 납골하는 관행에 충격을 받고 장묘문화 개선운동에 나서게 됐다.

신 시장은 “같은 유교문화권 가운데 중국과 일본을 뺀 우리만 여전히 매장을 고집하고 있는데, 이래서야 21세기 국가경쟁력이 생기겠느냐”고 되묻고 “시립공동묘지가 만장된 뒤에는 아예 매장금지 관련 조례 제정을 추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양/홍용덕 기자ydhong@hani.co.kr

대전② "음산한 분위기 떨쳐야" 건축비 곱절들여 고급화

대전시에서 충남 연기군으로 나가는 1번 국도변 국방과학연구소 맞은편인 유성구 안산동 연화봉 중턱에 조계종 구암사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고즈넉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극락전이 아래 위로 배치돼 있고, 기다란 요사체가 들어서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산중의 다른 절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구암사(주지 북천 스님·42)에서 최근에 완공한 극락전이 극락세계를 건설할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곳은 구암사에서 가장 호화롭게 지어진 `법당'이 아니라 중생들의 납골 유해를 모시는 `납골당'이기 때문이다.

극락전이 가장 호화롭게 된 것은 1205평에 건평 90평의 2층 건물 규모 때문이 아니다. 일반 법당 건축비의 거의 세배가 들어간 10억5천만원(시비 6억원, 구비 2억원, 절 부담 2억5천만원)을 들여 지었기 때문이다.

북천 주지스님이 호화로움을 고집했던 것은 납골당이 혐오시설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이 돼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장묘의식이 산 자와 죽은 자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납골당을 짓더라도 멀리 떨어지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 산 자나 죽은 자 모두 이의 활용을 기피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편, 죽은 자에 대한 유교적인 효 의식이 후손으로 하여금 망자에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싶어하는 성향을 감안하여 경내에서 가장 좋은 집에 모시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후손들이 자신의 부모뿐 아니라 스스로도 사후에 이곳에 묻히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고급 내장재 등을 사용하고, 또 후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과 천불이 모셔진 천불전에서 예불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건축했다.

실제로 극락전 납골함에는 지옥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지장보살 한 분씩 모두 870위의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북천 스님이 납골당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10여년 전 유성구에서 무연고 납골유해를 모신 금고동 설영각에 영혼을 달래주러 가면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시설이 낡아 산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보고 우리나라 장묘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국의 납골당이 있는 곳은 모두 찾아가 봤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분리돼서는 안되고, 산 자의 삶과 일체화되는 시설이 되기 위해서는 후손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좋은 유택이 먼저 건립돼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야 살아 있는 당사자들도 화장을 유언하고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북천 스님은 “시설 고급화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솔선해서 납골당 안치를 후손에게 유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손규성 기자sks2191@hani.co.kr

대전① 전시장·시범단지등 조성 납골묘 보급확산에 주력

대전시는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납골묘 전시장을 설치하고 시범단지를 조성하는 등 납골묘의 보급 확산에 힘쓰고 있다.

시는 내년 4월 시민 이용이 많은 서구 둔산동 둔산공원 안 200평의 터에 납골묘 전시장을 개설하고 10여종의 다양한 납골묘 모형을 선보이기로 했다. 다양하고 실용적인 납골묘 모형을 공원 이용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해 화장 및 납골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전시 서구 괴곡동 시립 공설묘지 안에 있는 납골당인 `영락원'의 운영상태를 보면 시민들의 장묘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지난 97년 1월부터 납골 유해를 안치하기 시작한 영락원에는 11월말 현재 1620기(유연 720, 무연 900)가 안치돼 있는데, 올 들어서만 유연납골 안치수의 절반이 넘는 416기가 들어왔다. 지하1층, 지상 2층 규모(연건평 350평)의 이 영락원은 유연납골 1만700기, 무연납골 1만5천기를 안치할 수 있어 아직은 여유가 있다.

납골묘 사용자들은 주로 유언에 의해 화장되고 납골로 만들어져 안치되는데, 거의 모든 종교가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영낙원에는 이름을 대면 금방 알 만한 유명인사들의 유해는 아직도 찾아볼 수 없다. 시 장묘관리소 관계자는 “중국의 덩샤오핑이 화장을 한 사실이 널리 알려진 뒤 납골묘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사회 지도층이 납골묘 사용을 선언하면 일반인의 활용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는 납골묘 사용을 더욱 촉진하기 위해 시립 장묘시설의 현대화와 공원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서구 괴곡동 공설묘지에 납골묘 시범단지를 조성한 뒤 2003년부터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서남부생활권 개발사업 등 대규모 도시 개발사업 때 공원 안에 납골공원을 조성하는 등 장묘시설이 주민 복지시설로 인식되도록 할 방침이다.

대전/손규성 기자sks2191@hani.co.kr

손씨 율동문중-"후손 편하고 국토 지키고" 문중 앞장서 납골묘 조성

유교문화를 숭상해 온 월성 손씨 경주 율동문중이 납골묘를 만든 사실이 알려져 지역사회에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다.

율동문중쪽은 “죽은 뒤 너도나도 땅을 차지하면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가 언젠가는 온통 묘지로 가득차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문중에서는 지난 5월 마을 뒤 선산에 10평 남짓한 납골묘를 만들어 31분의 조상을 모셔놨다.

“400∼500기를 더 모실 수 있으니 앞으로 700년 동안은 묘지 걱정 없이 살아도 된다”고 문중 관계자는 말했다.

월성 손씨 율동문중은 300여년쯤 전 손기 선생이 선조들이 살아오던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를 떠나 30여㎞ 떨어진 경주시 율동 솔밭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시작됐다.

조상 대대로 유교풍습을 지키며 살아온 율동문중이 앞장서 납골묘를 조성하게 된 것은 이 문중의 맏손자 손시익(76·경주시 율동)씨의 노력 덕분이다.

“11살쯤 되던 해였지요.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모든 격식을 갖춰 9일장을 치렀을 만큼 마을에는 전통 유교문화의 풍습이 뿌리깊었습니다.”

그러나 손씨는 “젊은이들이 앞다퉈 도시로 떠나고 나면 20∼30리씩 흩어져 있는 조상 묘를 누가 지킬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납골묘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5촌 진춘(67)씨 초청으로 후쿠오카에 머물면서 일본 사람들이 집안에 마련한 가족 납골묘와 도심 한가운데 설치한 납골당을 보고는 우리나라도 장묘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문중 어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부 반응이 대단했지요. `시신을 모신 뒤에는 다시 옮길 수 없다'며 꿈쩍도 않았지요.”

그러나 15년여에 걸쳐 `납골묘는 후손들이 성묘나 벌초를 할 때 묘소 관리를 편하게 할 수 있고, 크게는 국토를 보존하는 길”이라고 설득한 끝에 일가친척들의 승낙을 얻어냈다.

“납골묘는 조상에게 누를 끼치는 게 아니라 선조들을 영구히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라는 손씨는 “아름다운 우리 산천이 묘지로 뒤덮이기 전에 정부와 자치단체들이 나서서 적극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구대선 기자sunny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