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개혁 - 나는 이렇게(한겨레)

고건 서울시장/ 온가족이 화장서약
정경군 장개협 상임이사/"권력층 매장선호 법제정 걸림돌
김진현 문화일보사 사장/ "화장엔 반성·참회의 뜻이…
유인하씨/ "문중묘만 정비해도 국토 숨통 트일 것"
정범구 박사 부부/ "삶의 흔적은 장기기증으로…"
박청수 원불교 교무
이재광·홍정혜씨 부부
송보경 서울여대 교수/ "주검도 재활용 위해
화장 유언장 쓴 은인상씨/ "효심은 가슴에 묻고 육신은…"
이재성 성공회대 총장/ "평등사회 가는 길…정책반영

김완주 전주시장/ "화장장 이용하면 보상금 줘야"
강근식·김순예 부부/ "부모님 결심 계기 화장권유 전도사됐죠"
김천주 주부클럽연합회장/ "화장이 큰 흐름될 날 머지않아"
송위지 한국외대 교수/ "인간성 실천운동"서약 학생 가산점
신상훈 이화산부인과원장/ "고인 가까이 만난듯 반가워"
시로 유언 쓴 김만선씨/ "땅에 속박되지 않고 물따라 바람따라"
벤처사업가 유광진씨/ "최첨단 '꿈의 납골당' 만들 겁니다"
건축디자이너 허순길씨/"도심속 아늑한 추모공원 아쉬워"
최영희 여성단체협의회장/ "화장유언 거스른 불효

 

김완주 전주시장/ "화장장 이용하면 보상금 줘야" 

“전주시 공동묘지의 여분이 800기에 불과한데 묘지를 새로 조성하려면 1000억대의 엄청난 예산이 필요합니다. 돈도 문제지만 묘지터를 구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지난 21일 화장 서약을 한 김완주(53) 전주시장은 “행정하는 사람에게 묘지난은 현실적으로 부닥친 매우 급박한 문제”라며 “시민들을 솔선하는 차원에서 주저하지 않고 화장 서약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주시의 당면 현안으로 떠오른 묘지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간담회와 공청회 등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았다. 뜻밖에 화장을 선호하는 의견이 높게 나왔다.

의식 개혁도 중요하다고 보지만 그의 지론은 “장묘와 관련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화장장을 이용하면 10만원씩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조례안이다. 납골당 이용 기간을 애초 3년에서 5년으로 늘렸고, 시설도 새로 깨끗하게 가꿨다. 화장에 대한 시민들의 꺼림칙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시민공모를 통해 화장장과 납골당의 명칭도 각각 `승화원'과 `봉안당'으로 바꿨다.

김 시장은 “앞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가족납골당을 만들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하는 등 화장에 대한 각종 혜택을 줄 생각”이라며 “전주시내 모든 무연고 묘지를 조사해 화장하고 납골당으로 옮기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바로 그의 팔순 노모가 화장에 대한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화장 얘기만 꺼내면 고개를 홱 돌리십니다. 시장이 앞장서야 되지 않겠느냐고 여러 차례 말씀드려도 아직 완강하시거든요.”

그는 “화장을 선택하는 게 지역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라며 “언젠가는 어머니께서도 마음을 돌리실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임석규 기자skylark@hani.co.kr

강근식·김순예 부부/ "부모님 결심 계기 화장권유 전도사됐죠" 

“화장 서약을 한 뒤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숙제를 냈어요. 친구나 직장 동료 등 주변 사람 100명에게 화장 서약에 참여시키는 숙제 말이에요.” 서울의 한 외국인회사에 다니는 강근식(38·경기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김순예(36) 부부는 화장 서약을 한 지난달 22일부터 이 숙제를 하느라 바쁘다. `화장 전도사'가 된 것이다.

강씨 부부가 이런 결정을 한 데는 큰 아버지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장례를 위해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고희를 넘긴 부모님이 “앞으로 모든 가족이 화장을 해 자손들에게는 묘지 관리의 부담을 주지 말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의견에 공감한 가족들은 수소문 끝에 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를 찾아 냈고 화장 서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내 주검이 흙더미 속에 묻혀 서서이 부패되는 것보다 한줌의 재로 작은 흔적을 남기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부인 김씨는 “화장 서약에 참여한 뒤부터 죽음에 대해 다소 초연해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남편 강씨도 “늘 즐기는 등산길에서 산 속의 흉물로 방치된 무연고 묘지를 볼 때마다 `나도 저러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며 “이젠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며 홀가분해한다.

“3년 전 서울에서 이천으로 이사를 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전원생활을 만끽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들은 “전원이 묘지로부터 해방되어야 이런 생활도 보장되는 것 아니냐”고 웃는다.

이천/김기성 기자rpqkfk@hani.co.kr

김천주 주부클럽연합회장/ "화장이 큰 흐름될 날 머지않아"  

“장개협 등록번호로 보면 4500만 국민 가운데 제가 18번째로 화장서약을 했죠. 부활의 종교인 기독교 신자지만 죽은 다음엔 가장 빨리 흙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국 64개 지부와 미국 지부 등에 15만명의 회원을 둔 대한주부클럽연합회 김천주(66) 회장은 요즘 화장 장려운동으로 몹시 분주하다. 지난해 화장 서약을 한 뒤부터 전국 10개 지부와 지회에 `장례정보 상담창구'를 개설해 운용하는 한편, 1주일에 두번 이상은 전국을 돌며 강연활동을 펼친다.

화장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사후 문제는 자식들에게 떠맡기지 말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예상 외로 화장문제에 대한 호응이 뜨겁다고 한다.

“화장 서약을 하기 전까지 화장에 대해 따로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지난 94년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되도록 자주 가야지' 마음 먹으면서도 1년에 고작 여섯번밖에 찾지 못하고, 시부모 묘소도 다른 곳에 흩어져 있어 본의 아닌 불효를 해오던 터라 주저하지 않았어요.”

김 회장은 먼저 가족회의를 통해 자신이 `한국형 가족묘'의 첫번째 이용자가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화장 뒤 아무런 흔적이 없는 것보다 납골묘를 만들어 12기 안팎이 한 자리에 모이면 가족들의 번거로움도 덜고 성묘의 미풍양속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의외로 많아 화장이 대세로 올 날이 머지 않았다”고 믿는다.

주부클럽연합회는 본부와 지부 직원을 합쳐 현재 600명 정도가 화장 서약을 했으며, 그동안 `마음은 경건하게, 장례는 검소하게'를 구호로 내건 <건전 장묘문화 실천 지침서>를 만들어 15만부 이상 나눠줬다. 또 지난해와 올해 두차례에 걸쳐 장묘개혁을 위한 의식조사를 실시하는 등 시민단체 가운데 눈에 띄게 장묘개혁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글 박근애, 사진 이종근 기자pgaroot@hani.co.kr

송위지 한국외대 교수/ "인간성 실천운동"…서약 학생에 가산점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송위지 교수(철학과)는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학점을 준다. 장기 기증이나 화장 서약, 헌혈, 심지어는 혼전 순결 서약을 한 학생들한테는 100점 만점에 30점을 가산한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이른바 `인간성 회복 실천'을 하지 않은 학생은 C플러스에 머문다.

“이 시대에 필요한 기초적인 인간성을 심어주자는 것이지요. 사회에 대한 배려, 남을 위한 희생 같은 것을 장기 기증이나 화장 서약 등으로 실천해 보이자는 겁니다. 93년부터 죽 해 왔는데, 학기 초에 이런 얘기를 한 뒤 기말에 보면 2~3%만 빼곤 모두 실천을 합니다.”

송 교수는 재수 시절, 죽음과 정면으로 맞서고 싶어 공동묘지를 찾아 밤새 주검과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오랫 동안 염사들을 쫓아다니며 염을 배워 전문가 수준에 이른 독특한 이력의 교수다.

“이젠 염 전문가가 돼 묘지 이장도 수없이 해보고 전국의 염사를 상대로 교육도 여러차례 했습니다. 매장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이장할 때 남아 있는 유골들의 처연한 모습을 단 한차례라도 보라고요.”

그는 지난 95년 머뭇거리는 부인을 설득해 두 아들과 함께 가족 모두가 장기 기증과 화장 서약을 했다. 최근에는 `인간성 회복 운동'의 하나로 대만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모금 운동을 펼쳐 이번 학기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로부터 모두 47만9550원을 모금해 한겨레신문사에 전달하기도 했다.

“학생들에 대해 사회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게 하는 동기 부여가 중요합니다. 화장 서약에 대해서도 학기 초에는 저항감을 가지다가도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대다수가 동조하고 나서지요. 젊은 대학생들의 이런 실천이 장묘문화 개혁에도 튼튼한 노둣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김영철 기자yckim@hani.co.kr

신상훈 이화산부인과원장/ "고인 가까이 만난듯 반가워" 

“아주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돌아가신 분들을 가깝게 만나는듯한 반가움이랄까, 영원히 이별했다는 생각이 안들더라고요.”

전북 익산시 창인동 이화산부인과 신상훈(58) 원장은 “가족납골당에서는 무덤을 찾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며 “영적인 교감을 위해서도 납골당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원장과 6촌까지의 친족들이 지난해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선산에 마련한 가족납골당은 가족납골시설의 모범으로 꼽힌다. 반지하로 만든 석조 납골당은 1.7평에 지나지 않지만 150기는 족히 모실 수 있는 규모다. 15평 남짓한 주변 터에는 흰자갈을 깔고, 참배 공간과 통풍 시설도 갖춰 산뜻하게 꾸몄다. `영안당'이라는 푯말도 달았다. 시설 비용이 3000만원 정도 들었지만 친족들의 분담액은 200여만원이어서 묘지 조성보다 훨씬 경제적이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작은 아버지께서 제사나 명절 때면 납골당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전국의 좋다는 납골시설을 직접 찾아가 사진까지 찍어오셨지요. 그분의 설득에 모두 화장을 약속했습니다.”

신 원장은 `영안당'을 안과의사 출신인 작은 아버지(78)의 공으로 돌렸다.

“문제는 집안의 제일 어른인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도 완공된 납골당을 둘러본 뒤에는 “편안하게 보인다”며 그 자리에서 화장을 승낙하셨습니다.”

신 원장 일가는 지난해 한식날 '영안당' 봉안식을 치르고 따로 관리 규정까지 만들었다. 규정에는 화장을 거부하는 사람을 위해 납골당 옆에 4기분의 묘지터를 떼어 두되, 육탈이 이뤄지는 12년 뒤에는 후손들이 반드시 화장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신 원장은 “납골당이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납골당을 초현대적인 시설로 만드는 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산/임석규 기자skylark@hani.co.kr

시로 유언 쓴 김만선씨/ "땅에 속박되지 않고 물따라 바람따라…"  

“`애비가 죽거든/ 절대로 땅에 묻지 말거라'/ 네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애비가 일렀던 말/ 아직 잊지 않았겠지/ 이젠 묻지 않아도 될 터/ 살아 생전/ 땅 한 뙈기 갖지 않은 연유를/ 지하에 갇히면/ 어찌 스스로/ 노닐 수 있단 말인고/ 땅에 묻히는 건 속박이거늘/ 강물 따라 바람 따라/ 발길 닿는 곳이/ 내 쉴 곳이거늘/ 저 높고 푸른 하늘보다/ 더 좋은 쉼터가/ 이 세상/ 그 어디메 있단 말인고”

`미리하는 유언-사랑하는 아들에게' 일부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김만선(58·의정부 금오초등학교 글짓기 선생님)씨의 화장서약 이유다.

지난 60년 <새교육> 잡지에 시가 당선되면서 등단과 함께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그는 참교육 실천 문제로 학교쪽과 갈등을 겪어오다 71년 교사생활을 그만 뒀다.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 아동분과위 회원으로 작품 활동에 몰두해오다 지난 93년부터 방과후 교실의 글짓기 교사로 나섰다. 88년 시집 <차라리 슬퍼 좋은>을 냈으며, 올해에는 <민향이의 환경 일기>라는 동화집을 펴내기도 했다. 자신을 `자연주의자'라고 일컫는 그는 아들과 딸 이름도 `산'과 `강'으로 지었다.

김씨는 “나 하나라도 한뼘의 땅을 차지하고 눌러 앉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20여년 전부터 어린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화장서약 이후 시로 남겼다.

“묘지의 권위를 보여주는 봉분과 석물은 아무리 좋은 말로 변명을 해도 `가진 자의 위세'입니다. `인생은 결국 한번 죽는 것'이라는 진리를 외면하는 매장자들의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지요. 지도층 인사의 솔선수범이 특히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차한필 기자hanphill@hani.co.kr

벤처사업가 유광진씨/ "최첨단 '꿈의 납골당' 만들 겁니다" 

납골당과 벤처기업.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두 단어를 하나로 엮은 사람이 있다. 유광진(38·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씨는 “묘지강산을 금수강산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납골당밖에 없다”는 생각에 납골당과 벤처기업을 연결시키는 `모험'을 시작했다.

구미전자공고를 나온 유씨는 독학으로 지난 92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뒤 성남시의 한 변호사사무실에서 일하다 올해 초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유진정보개발'이라는 벤처기업을 차렸다. 곧이어 그는 명당이라는 소문 탓에 유난히 호화분묘가 많은 경기도 용인시에 연건평 1만5000평 규모의 납골당을 조성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 납골당은 10만기의 유골을 보관할 수 있는 세계적인 규모로 모두 컴퓨터로 제어되는 최첨단 시스템으로 관리·운영된다.

유족들에게 고인의 기일은 물론 생일, 각종 기념일 등을 알려주고 유골의 보관 및 관리 상태 등을 이메일과 인터넷을 통해 사진과 영상으로 제공한다. 8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납골당 안에 고인의 유품을 보관할 수 있는 함을 따로 만들어 가족들이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금의 납골당은 외부는 창고, 내부는 `신발장'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유씨는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납골당 이용을 기피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새로 지을 납골당을 최고급 수준의 오피스텔식으로 설계중이다. 혐오시설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납골당 앞마당에는 명절 등을 맞아 찾아온 가족들을 위한 골프 퍼팅 연습장도 갖출 계획이다.

이같은 첨단 납골당 구상을 듣고 이미 서울의 한 창업투자회사가 지분 참여를 약속했으며, 유씨는 외국 자본의 유치를 위해 일본 등을 오가며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아내와 함께 화장서약을 했다는 유씨는 “벤처기업은 컴퓨터 관련 산업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번 납골당 사업이 장묘문화 개선 운동의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성남/김기성 기자rpqkfk@hani.co.kr

건축디자이너 허순길씨/"도심속 아늑한 추모공원 아쉬워"  

시각 및 건축디자이너인 허순길(54) 디자인에꼴 고문은 어딜 가나 묏자리만 눈에 띤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공원을 조성했으면” 하는 바람 탓이다.

허씨는 이런 바람을 단지 꿈으로만 남겨두는 공상가가 못된다. 그는 지금 서울 여의도공원을 대규모 추모공원으로 꾸미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여의도공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잔디밭 공간만 잘 활용하면 효율적이고 예술적 운치가 넘치는 훌륭한 추모공원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이젠 묘지가 더이상 산 속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여의도는 교통이 편리하고 인근에 한강이 흘러 뛰어난 추모공원의 입지 조건을 갖추었다는 게 허씨의 판단이다. 그러나 현재의 여의도공원은 인적이 드물어 노숙자나 롤러스케이트를 즐기는 학생, 견학 온 유치원생 정도가 이용하는 유령공원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말한다.

“파리나 홍콩 등 외국 도시들의 경우 시내 한 복판에 아늑한 묘지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묘명판에 사시사철 꽃이 피고 새벽이나 저녁 산책길에서 죽은 사람과 영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공원이 살아 숨쉬는 셈이죠”

인근에 묘지가 들어선다면 여의도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그의 답은 간단명료하다.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공원이 조성되면서 땅값이 오릅니다. 연주회나 전시회 등이 잇따라 열리고 젊은이들의 미팅 장소로 이용돼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지요. 여의도에 추모공원이 들어서도 마찬가지 효과가 납니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허씨는 강조한다.

“파리시가 110년 전 에펠탑을 세울 때 시민 대부분이 반대했습니다. 도시의 흉물이라는 지적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상기 기자amigo@hani.co.kr

최영희 여성단체협의회장/ "화장유언 거스른 불효 지금도 후회" 

“시아버님이 화장하라고 유언을 하셨는데, 그걸 못 지켰어요.”

이게 마음에 늘 걸렸는데, 자신이 화장 서약을 해 다소 마음이 편해졌다고 최영희(60)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은 털어놓는다.

“시아버님이 생전에 자녀들을 모아 놓고 `내가 죽으면 화장하라'고 유언했어요. 그런데 돌아가신 뒤 가족회의를 했는데, 모두 화장하면 안 된다고 해 매장을 하고 말았어요. 그 땐 나도 화장을 반대했지요.”

살아 있는 사람들이 효도한다고 돌아가신 분의 유언을 저버린 셈이다. 최 회장은 지금도 화장 약속을 못 지킨 것이 불효를 저지른 것 같단다.

그는 “살기에도 바쁜 후손들이 4대 조상까지 제사 지내고, 묘지도 늘 돌보아야 하는 등 죽음이 후손들에게 짐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래서 그는 화장 서약을 하고 난 뒤 아들딸, 며느리까지 불러 죽은 뒤 화장해 서울 근교의 공동묘지에 묻었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면 납골묘에 안장하라고 당부했단다. 물론 자식들에게서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도 받았다.

“경남 사천에 선산이 있어요. 그러나 너무 멀어 추석, 설 등 명절에 자식들이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공동묘지든, 선산이든 자식들이 부모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장소는 문제가 안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동안 여협 활동을 통해 혼례·장례문화 개선에 앞장서 온 최 회장은 “앞으로는 여성들이 솔선수범해 장묘문화를 개선하도록 하는 데 더욱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앞장서면 장묘문화 개선이 훨씬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허종식 기자jo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