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개혁 - 나는 이렇게(한겨레)

고건 서울시장/ 온가족이 화장서약
정경군 장개협 상임이사/"권력층 매장선호 법제정 걸림돌
김진현 문화일보사 사장/ "화장엔 반성·참회의 뜻이…
유인하씨/ "문중묘만 정비해도 국토 숨통 트일 것"
정범구 박사 부부/ "삶의 흔적은 장기기증으로…"
박청수 원불교 교무
이재광·홍정혜씨 부부
송보경 서울여대 교수/ "주검도 재활용 위해
화장 유언장 쓴 은인상씨/ "효심은 가슴에 묻고 육신은…"
이재성 성공회대 총장/ "평등사회 가는 길…정책반영

김완주 전주시장/ "화장장 이용하면 보상금 줘야"
강근식·김순예 부부/ "부모님 결심 계기 화장권유 전도사됐죠"
김천주 주부클럽연합회장/ "화장이 큰 흐름될 날 머지않아"
송위지 한국외대 교수/ "인간성 실천운동"서약 학생 가산점
신상훈 이화산부인과원장/ "고인 가까이 만난듯 반가워"
시로 유언 쓴 김만선씨/ "땅에 속박되지 않고 물따라 바람따라"
벤처사업가 유광진씨/ "최첨단 '꿈의 납골당' 만들 겁니다"
건축디자이너 허순길씨/"도심속 아늑한 추모공원 아쉬워"
최영희 여성단체협의회장/ "화장유언 거스른 불효 지금도

 

고건 서울시장/ 온가족이 화장서약 

“죽어서 화장 처리될 때까지 화장장려 운동에 앞장 설 겁니다.”

고건 서울시장은 열렬한 화장 예찬론자다. 그는 화장 서약 남기기 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8월 일찌감치 `화장 서약'을 했다. 부인과 3남 등 가족들도 모두 끌어들였다. 그렇다고 화장에 대한 무슨 종교적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안 분위기는 오히려 매장쪽이다. 고 시장이 화장운동의 `전위'로 나선 것은 오랫 동안 지속되어온 매장 관행을 바꾸기 위해선 지도층이 나서야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관선 서울시장 시절 김수환 추기경과 얘길 나누다 화장에 눈을 떴어요. 행정을 죽 해 온 사람 입장에서 묘지난을 해결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는 위기의식 같은 게 생기더군요.”

김 추기경은 당시 천주교 성당들이 관리·운영하는 공원묘지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신도들이 공원묘지에 묏자리를 얻으려고 난리가 아니라고 털어놨다. 고 시장은 이 자리에서 “화장 장려를 위한 본격적인 시민운동이 필요한 때”라는 김 추기경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 뒤 큰 계기가 없다가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로 시립묘지가 죄다 떠내려 가는 등 피해가 잇따르면서 `이 때다' 싶었습니다. 간부회의에서 화장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공개선언을 하고 화장을 유도하는 각종 시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한 뒤 곧바로 화장 서약을 했지요. 이어서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화장을 계기로 지난해 9월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장개협을 발족시키게 됐습니다.”

고 시장은 최근 1~2년 사이 화장에 대한 시민의식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면서 “이번 캠페인은 단순한 의식개혁이 아니라 화장을 실천하도록 행동을 유발해 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시의 화장·납골 시설은 단기적으로는 화장 수요를 감당할 수 있지만 화장 증가 추제로 볼 때 중기적으로 용량이 크게 부족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고 시장은 이에 따라 올해 안에 `수도권장묘개혁협의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묘지난이 가장 심각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광역단체장과 장개협 등 민간단체 대표 등이 모여 화장장·납골당 신설 등 묘지난 타개와 화장 수요 증가에 따른 각종 정책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주민 반발로 벽에 부딪혀 있는 서울시 제2화장장 건립 문제도 여기서 같이 고민할 생각이다.

“화장장, 납골당 같은 장묘시설을 당대 최고의 예술품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데가 친숙하고 쾌적한 시민공간으로 조성돼야 화장에 대한 거부감을 불식할 수 있어요.”

김영철 기자

정경군 장개협 상임이사/"권력층 매장선호 법제정 걸림돌" 

"종교단체 묘지도 모두 꽉 찼어요. 어디든 묻을 데가 없습니다."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장개협) 정경균(63) 상임이사는 국내 보건사회학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보건사회학계 원로다. 이런 그가 정년을 2년 남겨놓은 지난 8월 서울대를 명예퇴직했다.

정 이사가 이런 '아름다운 물러남'을 선택한 데는 후학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장묘문화 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에 전념하겠다는 쉽지 않은 판단이 깔려 있다. 그만큼 그는 우리나라 장묘문화의 문제점과 묘지난의 심각성을 일찍이 인식한 몇 안되는 지도층 인사 가운데 하나다.

"후손에게 금수강산을 물려줘야지 묘지로 꽉찬 묘지강산을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늘 '나는 화장해야지'하는 다짐을 거듭해 왔지요.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갖고 들을 바라보십시오.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묘지로 꽉차 있는 산과 들을 보고 이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가 지난 9월 발족한 장개협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초대 상임이사 자리를 선선히 승낙한 것도 이런 확고한 다짐 탓이다.

"앞으로 50기 정도 들어가는 가족 납골묘를 만들겁니다. 이곳에 할아버지와 부친은 물론 내 자신과 증손자까지 들어가도록 할 작정이에요."

오랜 관행을 부수는 것은 나부터 앞장서 실천하는 작업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이사는 "화장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최근들어 크게 좋아졌는데 지도층이 문제"라고 개탄한다. 그는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지 않는 것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호화묘지를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선 목청을 높인다.

"화장시설, 납골등 등은 혐오시설이 아니라 누구나 필요한 편의시설이에요. 그런데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안된다는 시민의식은 문제입니다. 이제는 범국민적으로 장묘문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허종식 기자

김진현 문화일보사 사장/ "화장엔 반성·참회의 뜻이…"  

“권력·재력·명예를 얻기까지 다소 무리한 방법을 동원했더라도 지도층이 되면 과정상의 무리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뒤따라야 합니다. 화장은 이런 의미의 반성과 참회이며, 혜택받은 사람들이 죽은 뒤에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는 방법이지요.”

김진현(63) 문화일보사 사장은 국내 언론사 사장 가운데 유일하게 화장서약을 했다. 그것도 부부가 함께 서명했다.

지난해 한국장묘개혁범국민협의회가 발족할 때 준비위원으로 참여한 뒤 현재는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 사장은 사실 오래 전에 화장 결심을 굳혔다.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있던 지난 90년 집사람과 함께 화장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합의했습니다. 당시 서약을 받는 데가 없어 공식 서약은 지난해에야 하게 됐지만은요.”

김 사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도덕군자'로 비칠까 봐 화장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친족이나 친구 등 오해하지 않을 만한 사람들과의 모임에선 빠짐없이 화장을 권유한다. 같은 생각을 하는 동년배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 놀라기도 있다.

김 사장은 장손인 형으로부터 선친의 묘소를 화장으로 깨끗이 정리하기로 반승락을 얻어둔 상태다. 온 집안 식구가 모여 화장문제를 논의할 `심각한' 가족회의를 열 생각이기도 하다. 아들을 넷이나 둔 그의 화장 결심은 지도자의 책무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큰 작용을 했다.

김 사장은 “격변의 근현대사에서 남다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자신을 키워준 사회에 고마와 할 줄 알아야 하고, 국민의 존경을 받지는 못할 망정 적어도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며 “화장은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자 후손이 쓸 땅을 미리 당겨쓰는 폐를 막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글 박근애, 사진 진천규 기자

유인하씨/ "문중묘만 정비해도 국토 숨통 트일 것"  

“반대가 엄청나더군요. 온갖 설득을 해도 회의에 부치면 곧바로 부결이에요. 생각 끝에 동조하는 일부 사람들과 장비를 동원해서 파 제치기 시작했습니다.”

유인하(74)씨는 지난 92년 종중회의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흩어져 있는 종중묘지들을 한곳에 모아 가족묘원을 조성했다. “묘지가 나라 망친다”며 장묘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해 온 유씨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해야 장묘문화가 개혁된다”는 신념으로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

“묘지들이 흩어져 있어 성묘를 하려면 여러 날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한곳으로 모은 뒤로는 편해진 건 물론 문중 사람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차례를 지내는 바람에 문중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장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지금은 죄다 조상 묘를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유씨는 “가족묘원으로 이장하면서 분묘 넓이를 줄이고 합장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묘지 면적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며 “각 곳에 있는 문중묘지만 이렇게 정비돼도 국토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한다.

순전히 문중묘지의 축소 이장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90년 문화 유씨 종친회 한 지파의 회장이 된 유씨는 “조상의 묘자리를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다”는 문중의 반대에 밀려 회장 재임 때는 결실을 못맺었다. 그 뒤 뜻이 맞는 다른 이가 회장 취임을 하면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장 사업을 강행했다는 유씨는 “이런 일은 일단 벌여놓은 뒤 성묘의 편안함이나 묘원의 안락함 등을 직접 체험하게 하면 설득된다”고 털어놓는다.

“요즘에는 나무꾼도 없어 오래 된 조상 묘는 길도 나있지 않아 찾아가기 어려워요. 기껏 고생해서 찾아가도 남의 조상 묘 벌초해주고 오기 싶상이지요. 이런 고생해 본 이들은 다들 흡족해 합니다.”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부인도 생전 약속대로 서울대 의대에 해부용으로 주검을 기증했다. 유씨도 마찬가지로 주검을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해 놓은 상태다.

“문중묘지 이장하면서 주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몇년만 지나면 다 흙으로 돌아가지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보다 자연스러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글 김영철, 사진 이종근 기자

정범구 박사 부부/ "삶의 흔적은 장기기증으로…"  

“삶의 자취 자체를 흔적으로 남겨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시사평론가이자 방송 토론 사회자인 정범구(45) 박사와 부인 변세경(43)씨의 화장서약 이유는 명쾌하다.

정 박사는 “우리나라 묘지가 이른바 명당에 자리잡아 주요 농경지를 잠식하고 있다”는 고교 때 지리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며 “묘지 관련 방송 토론회 사회를 맡으면서 이 생각이 떠올라 화장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중국에서는 산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반면 한국은 죽은 이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하는 것 같다”는 먼 친척 중국동포의 말에 화장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정 박사는 지난 95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집안의 반대가 있었지만 토론회 등 공식 석상에서 약속한대로 주검을 화장한 뒤 납골당에 모시는 `쉽지 않은' 실천을 했다. 지난 7월에는 부인 변씨도 친정 아버지가 숨지자 평소 유언대로 화장해 역시 납골당에 모셨다.

정씨 부부는 “아직 부모님 가운데 한분씩이 살아계시지만 돌아가시면 가족 납골당을 만들어 그곳에 안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문제”라며 “장기기증과 함께 화장 서약이 동시에 이뤄졌으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는 훈수도 잊지 않는다.

정 박사는 “고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에 이어 구본무 엘지그룹 회장의 화장 선언처럼 지도층 인사들의 잇단 참여가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아직도 국립묘지의 묘역 크기가 옛날 왕조시대처럼 대통령, 장군 등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은 국가철학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 부부는 “납골당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유럽의 가족 납골묘처럼 평장 등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을 할 필요가 있다”며 “화장 서약서를 미리 받아두면 가족 사이에 갈등의 소지를 없애는 역할까지 한다”고 귀뜸한다.

차한필 기자

박청수 원불교 교무 

“화장 서약은 죽은 뒤에 올 문제 해결에 앞서 사생관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합니다. 한줌의 뼈와 재로 남을 자신의 유한한 삶을 자각하게 하고 후회와 여한이 없도록 살아가게 하는 동력을 주지요.”

지난해 화장 서약을 한 박청수(62) 원불교 강남교당 교무는 원불교 교역자 가운데서도 두드러지게 활발한 활동을 해온 이다.

원불교 최고의결기구로 남녀 교역자 9명씩으로 구성된 수위단원이기도 한 박 교무는 강남지역 교인의 정성을 바탕으로 지난 30년간 나라 안팎으로 무지·빈곤·질병 퇴치에 힘을 써왔다. 원불교 평양교구장으로서 남북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최근 북인도 라다크에 카루나 자선병원을 열었고 캄보디아에 지뢰제거 기금을 보내는 등 43개국을 누비며 `큰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그가 화장서약 남기기 운동에 주저없이 나섰다.

그는 “원불교 경전인 제2대 교주 정산종사 법어 예도편 8장에 보면 `화장이 우선 보기에는 박절한 것 같으나 영식이 이미 없고 토석으로 화한 백골에 매장과 화장이 무슨 차별이 있으리요. 불교의 해석에는 사람의 육체는 이 업의 결합된 바라 하였으니 영을 위하여서는 화장하는 것이 도리어 유익될 점이 없지 아니할 것이니라'고 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원불교에서는 사회적으로 화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묘터를 자손의 화복과 연결시켜 공연한 노력을 하는 매장제의 폐습에 대한 지적이 있었던 만큼 화장 실천이 조용한 불길로 타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박 교무의 믿음이다.

원불교 익산 영모묘원에는 97년 1만2000기가 들어갈 수 있는 납골당이 완공돼 현재 300기가 모셔져 있고 원불교 공익부에 화장 동의서를 낸 재가 신도의 수는 1164명에 이르고 있다.

글 박근애, 사진 김진수 기자

이재광·홍정혜씨 부부 

“풍수나 영혼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게 이유랄까요. 의사라는 직업상 죽은 육신의 흔적이 별 의미가 없다고 보기도 하고….”

이재광(35·제천 서울병원 내과의사)·황정혜(33)씨 부부는 최근 `화장유언 남기기 운동'에 참여했다. 평소 화장 운동에 열심인 아내가 제의하자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이들 부부는 올해 초 장기기증운동본부에도 “뇌사 상태에 빠지면 눈·콩팥 등 일체의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했고, 이씨는 청년의사회에 “죽은 뒤 몸을 해부실습용으로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내 몸이 죽어 다른 사람에게 새 생명이 될 수 있다면, 환경오염(묘지의 국토잠식)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묏자리 잘 써 후손이 복(?)받는 것 보다 훨씬 낫다”는 게 이씨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의 해부용 주검이 없어 교과서에 나온 그림을 해부하는 교육 현실도 이런 결정에 한몫했다.

아내는 청년정보문화센터에서 일할 때부터 화장과 장기기증의 '전도사'였다. “떼어줄 것은 다 떼어주고 나머지는 재가 되어 농토를 기름지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 날 위해 잘 살아준 육체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황씨의 지론이다.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과정이란다. 천리안 홈페이지에도 화장을 권하는 글을 올릴 예정이다.

이들 부부는 “화장은 자연을 후손에게 깨끗이 물려주는 첫걸음”이라며 “뱃속에 있는 우리 아기를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화장에 동참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주/황순구 기자

송보경 서울여대 교수/ "주검도 재활용 위해 

“가지는 것을 최소화하자는 게 생활 신조입니다. 특히 죽은 뒤에 쓰레기를 남기지 말자는 생각이지요.”

`소비자문제를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인 송보경 서울여대 교수는 화장 서약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묻자 머뭇거림 없이 말문을 열었다.

화장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들어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송 회장은 이 방면의 상당한 선구자다.

“10여년 전부터 친구나 친지들에게 죽으면 주검을 병원에 기증하겠다고 공언을 했어요. 실험에 쓰건, 다른 무엇에 활용되건 나머지는 병원에 맡긴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지난해 고건 서울시장 등 각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화장 유언 남기기운동이 일어났을 때 주검을 기증하겠다는 자신의 뜻과 통한다는 생각에 바로 서명을 했다.

그러나 송 회장은 각자 자유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토가 묘지로 잠식돼 가는 데 대한 대책 마련은 시급하지만 화장을 하고 안하고는 당사자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화장 서약을 했다고 해서, 또 그게 정당하다고 해서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고 거듭 강조하는 그는 “한사람 평균 주거면적이 5.6평인데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집이 20평인 것도 사치”라고 털어놓는다.

김학준 기자kimhj@hani.co.kr

화장 유언장 쓴 은인상씨/ "효심은 가슴에 묻고 육신은 화장해라"  

“숨 거두면 폐기해야 할 물체인 것을, 생전의 불효건, 사후의 효도건 번거로운 장묘로 자위하지 말거라.”

은인상(70·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1가 91)씨가 두 달 전 서울과 대전 등지에 사는 6남매에게 편지로 보낸 유언장의 한 구절이다. 호사스런 봉분 치장을 언짢게 생각해 오던 은씨는 지난달 22일 주저없이 화장 서약에 참여했다.

“야산이건 높은 산이건 봉분이 가득합니다. 밭 한복판에까지 묘지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그는 “셋째 딸이 사는 독일에 갔을 때 산에 묘지가 전혀 없는 것을 보고 화장을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10여년 전 4대조의 봉분을 한 곳에 모셨습니다. 이장할 때 보니 흙밖에 없더군요. 결국 썩어 없어지는 게 육신이라면 유수에 흘러간들 어떠랴 싶었습니다. 집사람은 뜨거우니까 화장하지 말라고 하지만 죽고 나면 뜨거운 지 차가운 지 어떻게 압니까?”

은씨는 “사회가 바뀌면 관습도 변하게 마련”이라며 “화장에 대한 꺼림칙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주변에도 화장을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이 운동이 화장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결단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은씨는 “생전의 불효를 죽은 뒤의 효도로 자위하려는 잘못된 생각이 분묘치장”이라며 “자식들에게 깨끗이 화장하되 효심은 마음에 담아달라는 뜻에서 이런 편지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자연경관 해치며 유용한 땅 좁히며/보이지 않는 흙 속의 부패 추물들/봉분치장 겉치레 무슨 소용인가/깨끗한 화장에 효심은 가슴에”

'종말의 소망'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 형식의 유언장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전주/임석규 기자

이재성 성공회대 총장/ "평등사회 가는 길…정책반영 힘 쓸터"  

“삶의 철학이나 가치가 중요하지 몸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신념과 개인적인 철학 때문에 화장을 서약했다는 이재정(55) 성공회대 총장. 그는 지난 96년 아내와 함께 의과대학에 주검 기증을 악속했다. 해부학 강의를 위해 시체도 수입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이 총장은 “의학발전에 기여하고, 화장한 뒤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육신은 껍데기입니다. 육신에 얽매이기보다 정신과 뜻을 소중히 생각해야지요.” 조상 묘지를 좋은 곳에 쓰려고 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남긴 삶의 자취를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사 때 가족이 모이면 조상의 생전 일화, 또 삶의 가치 등을 자식들에게 설명해 준단다. 이래야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가진 사람'들이 앞장 서 묘지 크기로 불평등을 조장하는 현실에 대해 이 총장은 “산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호화묘지는 쓸 수 없도록 법을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겉치레에 치중하는 장묘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여권에서 결성을 추진중인 신당의 추진위원이기도 한 이 총장은 “장묘문화 개선은 평등 사회, 수평 사회를 위한 것으로 반드시 신당의 정책에 포함할 생각”이라며 “이제는 묘지 해결을 위해 지도층은 물론 정당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덧붙혔다.

허종식 기자jo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