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강산을 금수강산으로(한겨레)

장묘문화개선 캠페인
장묘문화 경품행사(국민 선호도조사)
<경품행사> 당첨자 발표
장묘시설 새이름 공모안팎
"화장해달라" 지도층중심 확산
50대 이하 절반 "화장해 달라"
가족납골묘 등 변화바람 솔솔
화장운동 지도층이 앞장서야
수도권 묘지 수원·성남 맞먹어
농촌도 '포화'…묻힐 땅이 없다
본인 화장 찬성률 76.6%
"명당인 도심지에 납골공원 만들자"

국민 10명중 7명 "본인 화장 찬성"
'화장 서약' 참여자 줄 잇는다
납골당 건립촉진 법적 뒷받침을
[사설] `장묘법` 개정 서둘러야
중국 '제2 장묘혁명' 준비 
"화장통해 영생" 힌두 관습 뿌리
드넓은 서부도 묘터는 좁다
휴식공간 꾸민 화장장 곳곳에
"풍수, 산소자리 잡기 아니다"
[아침의향기] 무덤 대신 우주로 가신 할머니

 

국민 10명중 7명 "본인 화장 찬성" 

우리나라 국민 10명중 7명 이상이 사후 본인의 화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 후 처리방법으로는 `가족납골묘' 형태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는 서울과 경기·충청·전라·경상·강원도에 거주하는 만 20세이상의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조사됐다고 30일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본인의 화장에 찬성한다는 답변이 76.7%에 달했으며 가족과 친지화장 및 타인화장에 찬성한다는 비율도 각각 60.2%, 70.7%로 나타났다.

화장 후 선호하는 처리방법으로는 `가족단위의 납골함을 보관하는 가족납골묘'형태가 좋다는 의견이 57.5%로 가장 많았고, `유골을 일정지역에 뿌리는 자연장 형태'(24.0%), `개개인의 납골함을 한 건물에 보관하는 납골당 형태'(12.0%) 등의 순이었다.

우리나라 묘지 현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묘지공간의 부족'(59.7%)이 꼽혔고,`묘지로 인한 자연환경 훼손'(56.2%),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성묘로 인한 교통혼잡'(43.3%)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화장을 기피하는 이유로는 `성묘를 통한 가족 유대의 유지'(36.1%)가 가장 많았으며 `매장이 조상대대의 장묘풍습이기 때문에'(28.6%), `두번 죽는 것 같아서'(26.1%)가 뒤를 이었다.

자신의 주거지 인근에 소규모 공원형태의 납골시설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 36.8%, 반대 31.9%로 찬성이 다소 많았다.

기존의 수의를 대신해 고인이 평소 아끼던 옷이나 즐겨입던 옷을 이용하는 방안에는 61.5%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화장을 할 때도 환경과 경제적 측면을 고려해 화장용 관의 경우, 불에 잘타는 저렴한 종이관을 사용하는 것에 51.7%가 “적극 이용하겠다”고 응답했다.

(서울/연합뉴스)

 

'화장 서약' 참여자 줄 잇는다

한겨레신문사가 서울시·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장개협)와 함께 펼치는  장묘문화 개선 캠페인에 국민들의 호응이 폭발적으로 이어져 20일까지 전국에서 모두 1000여명이 화장 유언 남기기 서약을 했다. 특히 새 장묘시설 용어 찾기를 위한 선호도 조사에는 하루 평균 500여명 이상씩, 이날 현재까지 모두 3000여명이 응모해 이번  캠페인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지난 14일 `묘지강산을 금수강산으로'란 주제로 첫 시리즈와 함께 시작된 화장 서약 접수에는 하루 평균 150~200명이 나서 이날로 모두 2000여명(단체 제외)이 화장 서약을 마쳤다.

주부 대상 교육기관인 서울 한림여자 중·실업고는 이현만(62)교장과 주부 학생들로 구성된 학생회가 나서 중·고 과정 재학생 1500여명 가운데 500명이 화장 서약을 하는 등 단체 서명도 줄을 이었다. 이미 부인과 함께 화장 서약을 한 이 교장은 “해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화장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화장 서약 참여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화장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서울 한성중학교 김태연 교사(49·국어)는 “학생들이 어려 피상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잠재의식에 남아 성장한 뒤 화장에 앞장서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년·노년층의 참여도 높아 부산 동아대 손승길(55·국민윤리) 교수와 전북 익산시에사는 최형(72)씨 등은 “이런 캠페인을 하는 시민단체를 서울뿐 아니라 각 지방에도 구성해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동성(63·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맞은편 선산에 묻힐 자리가 있지만 화장한 뒤 납골당이나 납골묘에 묻힐 생각”이라고 밝혔고, 광주시 주부 조선희(45)씨는 “죽으면 한줌 흙으로 돌아갈 육신인데 땅을 차지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젊은 여성들의 참여도 계속돼 미혼인 이선주(32·여·광주시 북구 일곡동)씨는 “결혼해서 남편이 반대하더라도 화장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오기도 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국내 첫 사설납골당 `자유로 청아공원'을 건립중인 김영복(38·여)씨는 “복지부 등 공무원들의 무관심과 각종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공무원과 관 제작업자, 장례식장 운영자들 제도 개혁을 촉구했다.

장개협 박복순(48)사무총장은 “국민의식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시설의 현대화만 이루어지면 이른 시일 안에 장묘 관행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김영철    허종식 기자

납골당 건립촉진 법적 뒷받침을

박의한(40·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최근 모친상을 당했다. 숨진 어머니를 종합병원 영안실에 모신 그는 형제, 친척들과 상의해 어머니를 매장하기로 했다. 장지는 경기도 여주에 있는 사설 공원묘지로 정했다. 박씨는 안장비를 포함해 공원묘지 구입에 450만원을 줬다. 장례비용은 음식비 등을 합쳐 1000만여원. 그는 향나무관 하나에 300만원, 수의 한벌에 100만원이 보통인 현실에 놀랐다.

그러나 박씨가 어머니를 안장한 여주지역은 사설 공동묘지의 경우 평당 33만원만 받도록 고시돼 있다. 박씨로부터 평당 100만원 정도를 받은 것은 불법인 것이다. 경기도 안에 있는 사설 공동묘지의 고시가는 10만~90만원 정도다. 그러나 고시 가격보다 실제 묘지 땅값은 휠씬 비싸다. 공동묘지 운영자들은 고시 가격만 받아서는 운영이 어렵다며 여러가지 항목을 추가해 돈을 더 받는다. 그러나 상주들은 이런 현실을 알지 못한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경기 고양시에 사설납골당 `자유로 청아공원'을 짓고 있는 김영복(38·여)씨는 납골 1기당 2만원을 받으라는 담당공무원의 말에 깜짝 놀랐다. 1기당 50만원은 받아야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정은 2만원이다. 김씨는 수익을 맞추려면 불법을 저지를 수 밖에 없다며 울상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장묘비용은 약 2조원으로 추산된다. 장례 1건당 평균 850만원. 이중 묘지 비용이 50%다. 따라서 화장한 뒤 납골당에 모시면 전체적으로 장례비용이 1조원 가량 줄어든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는 80평이다. 그러나 장군·장관은 8평, 영관급 이하는 1평이다. 그나마 영관급 이하는 반드시 화장해야 한다. 죽은 뒤에도 묘지 크기에 의해 높낮이가 가려지는 현장이다. `국립묘지령'은 이런 크기로 묘지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은 다르다. 중국은 지도층이나 일반인의 묘지 크기가 모두 같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대학도시 옥스포드시에서 10㎞ 떨어진 성마틴스교회의 풀밭에 일반인과 같이 누워 있다. 그런데도 그의 묘는 이름모를 추모객들이 놓고간 꽃이 끊이지 않는다. 묘지 크기가 존경심의 차이는 아닌 것이다.

프랑스의 드골대통령도 죽은 뒤 고향의 공동묘지에 묻혔고, 미국, 일본은 장군과 사병, 장관과 말단 공무원, 시민이 한데 어우러져 주택가에서 가까운 공동묘지, 납골당에 안장돼 있다. 호화묘지는 엄두도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화장장, 납골당을 민간인들이 투자하도록 하는 등 현실에 맞도록 법을 정비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현재 장묘 관련 법규는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 `국토이용 관리법' `도시계획법' `도시공원법' 등에 나뉘어져 있다. 이 가운데 국토의 효율화 측면이나 현실성에서 보면 제대로 된 법은 없다. 호화묘지를 만들면 5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해 사실상 강제력이 없는 셈이다. 뒤늦게 정부는 호화분묘의 경우 1500만원의 벌금을 해마다 물리고 화장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2년 전 국회에 제출한 이 법은 아직도 계류중이다. 권력, 금력을 가진 자들이 법 개정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허종식 기자

[사설] `장묘법` 개정 서둘러야

이번 추석을 맞아 성묘를 한 사람들은 도시와 농촌 가릴 것 없이 묘지난이 심각함을 다시 인식했을 것이다. 또 묘지가 국토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잠식하고 미관도 크게 해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성묘를 하지 않은 사람도 관련 통계수치를 보면 묘지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쉽게 깨닫게 된다. 98년말 현재 분묘수는 약 2013만기로 총 묘지면적은 전체 택지면적의 절반이 넘고, 분묘 1기당 면적은 약 15평으로 국민 1인당 주택면적(4.3평)의 3.5배에 이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마다 18만기의 무덤이 새로 생겨 여의도 면적에 육박하는 국토가 잠식된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를 화장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이 범사회적으로 폭넓게 전개되고 있다. 시민·사회·종교단체들과 언론이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 등 화장 확산 캠페인을 펼쳐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겨레>의 `장묘문화, 이젠 바꿉시다' 캠페인에 대한 호응도 좋아 지난 14일부터 불과 일주일 사이에 전국에서 1000여명이 화장 유언 남기기 서약을 했다. 또 화장장 이용 유족에게 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장묘문화 개선사업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늘고 있다. 자신이 죽은 뒤 화장을 원하는 국민의 비율도 대략 70%에 이른다. 고무적 현상이다.

그러나 시설과 제도면에서 보면 미비하기 짝이 없다. 화장시설 및 납골당이 늘어나는 화장인구를 감당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화장장 설치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려면 홍보강화와 함께 좋은 환경과 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예산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민간인들이 화장·납골시설에 투자하도록 관련법 규정을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장묘법)' 개정안을 시급히 처리하는 일이다. 이 법이 개정되면 분묘의 설치허용 면적이 개인 최대 24평에서 9평으로, 공동묘지 최대 9평에서 3평으로 줄어든다. 또 묘지사용기간이 60년으로 제한되고, 지방자치단체의 납골시설 설치 의무화를 비롯해 무연고 묘지 일제조사 및 정비, 가묘 설치 금지, 호화분묘에 대한 처벌 현실화 등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장묘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길을 열어줄 이 법안은 유감스럽게도 열달째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좁은 곳에 묻힐 수 없다는 특권의식을 갖고 있거나, 자신의 가묘나 친인척의 묘와 관련해 흠잡힐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 이해관계보다 국사를 우선해야 할 것이 아닌가? 국회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장묘법' 개정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중국 '제2 장묘혁명' 준비

베이징 시내에서 동쪽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국가 1급 화장장인 `동교 빈의관'.

잘 가꾸어진 잔디밭, 기와를 단정히 올린 건물에다 넓은 주차장은 고궁이나 공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 64년 생긴 이후 최근 보수 공사로 새 단장을 한 2만1800㎡ 규모의 이 화장장에서는 매년 8200~8500구의 주검을 화장한다.

장쉐창 부관장은 “화장장 시설로는 아시아 최고”라며 “1만기를 보관할 수 있는 납골당에는 유골 7000여기가 안장돼 있다”고 자랑한다. 20대의 장의차량으로 주검 운송부터 스테인레스로 제작된 8개 화장로에서의 화장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한다. 화장 비용은 1구당 200원(한화 2만8800원), 납골당 보관료는 1구당 30원(한화 4300원)이다.

국민의 100%가 화장을 하고, 지역 주민들도 화장장이 있는 것을 별로 괘념하지 않는 이유를 알만하다.

중국의 국립묘지인 베이징시 `팔보산 혁명공묘'는 지도자, 애국·민주 인사, 과학자, 문학가, 예술가, 고급 기술자, 혁명 열사 등 3000여명이 묻혀 있다. 묘지 크기는 1~2㎡로 모두 납골묘다. 청소년 교육단지가 조성돼 있는 이곳은 청소년들에게 공산당의 혁명 과정 등 중국 역사를 교육하는 중요한 장소로 쓰이고 있다.

혁명공묘 뒤켠에 있는 `만안공묘'는 누구나 묻히는 공동묘지다. 비석 하나와 시멘트 덮개가 전부인 납골묘의 크기는 모두 1㎡ 안팎이다. 부부 합장이 대부분이다. 봉분이 없는 평장으로, 묘지 간격이 30㎝ 밖에 안돼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묘지 관리인은 “1만여기가 넘는 무덤에는 혁명 열사, 문학가, 체육인 등 지도급 인사들이 일반 시민이 함께 섞여 있다”고 말한다.

베이징 시내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베이징시 창평현 도림촌, 한화로 1억원이 넘는 고급 빌라촌에서 1㎞ 떨어져 있는 공동묘지 `북경 빈능원'.

6만㎡ 크기에 2000여구의 시신이 묻혀 있는 이곳은 북경 시내 공동묘지와는 달리 고급 대리석으로 만든 비석과 납골함으로 치장한 납골묘가 대부분이다. 묘지 크기도 3~12㎡로 다른 공동묘지보다 크고 고급이다. 부부 합장인 3㎡짜리 묘는 중국돈으로 6000원(환화 86만원), 12㎡는 3만5000원(환화 514만원)이다. 중국 노동자의 한달 월급인 800~1000원과 비교하면 꽤 비싼 묘지다. 중국판 호화묘지인 것이다. 그런데도 묘지를 이곳에 쓰겠다는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묘지 관리인은 전했다. 개방정책 이후 부자가 생겨나면서 묘지 크기도 부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현장이다.

13억명이 사는 중국은 어디를 가든 개인묘는 보이지 않는다. 덩사오핑은 숨진 뒤 화장됐고 유골은 바다에 뿌려졌다. 미이라로 만들어져 텬안문 광장 앞 기념관에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는 마오쩌뚱도 “죽은 뒤에는 화장할 것”을 유언으로 `지시'했다.

지난 56년 공산당원을 1차 대상으로 실시된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화장정책은 지도층의 이런 솔선수범에 힘입어 유교적 전통 탓에 완강하게 지속되어온 매장 위주의 장묘문화를 전면적으로 바꿔버렸다. 지난 50년 이전의 중국은 호화분묘, 명당 고르기 등 뿌리깊은 매장 관행 때문에 묘지 면적이 본토 총 경작지의 1.1%를 차지했다. 남한 전체 면적보다 넓은 규모다.

중국은 납골묘, 납골당에 이어 최근 들어 유골 가루를 바다나 나무 밑에 뿌리는 유골림을 조성하는 등 아예 유골을 남기지 않는 장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베이징시 민정국 관계자는 “이 장례 방법이 뿌리내리면 중국의 장묘문화는 또다시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허종식 기자

"화장통해 영생" 힌두 관습 뿌리

지난 16일 새벽 3시 인도 바라나시 강가강 주변.

강쪽으로 드리워진 80개의 가트(계단)로 이어지는 폭 1m쯤의 거미줄 같은 골목길에 곡소리의 일종인 `라마라마' 소리가 퍼진다. `화장터'라는 뜻도 가진 이 가트들은 힌두사원이자 순례지다. 세 곳은 화장터로 사용된다.

빨강, 노랑의 원색 헝겊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동여맨 주검을 대나무 들것에 실은 운구행렬은 밤늦도록 이 골목길을 메우고 강가에는 종일 매캐한 연기 속에 주검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화장터인데도 우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불에 타는 주검 앞에서 한 무리의 장정들이 큰 소리로 노래하며 웃고 있다. 하리나하 야다이(40)는 “민속음악 가수인 스승이 숨져 제자들이 모였다”며 “145명의 후계자를 남긴 스승은 모든 삶을 다 했으며, 우리가 할일은 그에게 노래를 바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인도 사람들은 죽음을 `목샤'(자유)로 부른다. 영원한 자유로 가는 관문이 죽음이며, 이 생에서 사용한 육신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육신은 물, 불, 공기, 에테르, 흙 등 5개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장을 통해 원소가 해체된 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게 이들의 믿음이다.

10억 인도인의 80% 이상은 전통적인 화장법을 따르고 있다. 죽은 뒤 3시간 안에 화장하는 것이 관습이다. 무슬림과 가톨릭교도는 매장을, 극소수의 조로아스터교도는 아직 조장을 고수하고 있기는 하다.

이런 문화적 관습 탓에 그곳에서 죽고 강물에 뿌려지는 것만으로도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성지'이자 `위대한 화장터'로 불리는 바라나시의 화장터 세 곳은 신새벽부터 가동된다.

4036㎢의 면적에 인구는 130만명이나 되는 바라나시에서 화장되는 사람의 40%는 다른 지방 출신이다. 가장 큰 화장터인 마니카르니카가트에선 하루에 적어도 100명을 화장하는데 장작만 20t 이상 쓰인다.

들것에 운반된 주검이 강물로 씻겨지는 정화의식을 거치고 나면 곧바로 화장에 들어간다. 불이 꺼질 무렵 상주가 점토 항아리를 잿더미 속으로 던지면 사자와 유족들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다. 타고 남은 재를 강에 뿌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14살부터 화장일을 해 온 하리잔(불가촉 천민) 라마 샨카르(29)는 전기 소각로로는 45분, 전통적인 화장으로는 3시간 만에 사자의 육신이 가족과 완전히 헤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향나무냐 보통나무냐 등 연료의 차이에 따라 화장에 드는 비용은 하리잔(불가촉천민)에게 주는 수고비까지 합쳐 1000~2000루피(3만원~6만원)가 든다. 택시기사의 월급이 월 1000~5000루피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적은 액수는 아니다.

전기 소각로를 이용할 때는 200~700루피(6000원~2만1000원)로 더 싸다.

전기 소각로는 20년 전부터 도입돼 뭄바이 콜카타 럭나우 등 전국에 90~95개가 가동중이지만 싼값에도 불구하고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돈이 아주 없는 극빈층이나 상류층 계급 일부만이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바라나시에 있는 `자유의 집'에는 임박한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인도 전역에서 노인들이 몰려든다. 이곳에서 만난 구루 카필레 이슈와라 스와티(80)는 “영혼은 자유이며 물리적인 죽음은 다만 미혹이며 상상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1948년 암살된 뒤 화장된 마하트마 간디도 유골 한점 남기지 않았다. 델리 간디기념박물관장 라다크리슈난(52) 박사는 “간디가 남긴 것은 그가 삶 자체로 보여준 메시지와 우리 가슴에 새겨진 추억이 전부”라고 말한다.

인도에서 화장은 황달·수두 등 전염병이나 사고로 죽은 사람, 임신부, 동물 등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이 생에서 주어진 카르마(업)와 다르마(의무)를 다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화장인 까닭이다. 인도 사람들에게 화장은 소멸의 상징이자 카르마를 다 태워 불멸의 삶으로 거듭나는 길이기도 하다.

델리 바라나시/박근애 기자

드넓은 서부도 묘터는 좁다

19세기 중반 도시개발과 함께 매장을 금지한 미국 뉴욕시의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근처에는 두 개의 성당이 있다. 150여년이 넘어 비문을 읽을 수 없는 비석이 줄지어 서 있는 이들 성당의 뜰은 산책 나온 주민과 직장인들로 붐빈다. 더러는 벤치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예배를 본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됐다고 한다.

240에이커(약 30만평)로 뉴욕시에서 두번째로 큰 사이프러스 힐(삼나무 언덕)에는 퍼블릭 골프장과 공원, 주택가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몇만달러를 들인 호화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관이 들어갈 만큼만 땅을 쓰고 비석도 높이 50㎝ 미만이 대부분이다. 봉분은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사정은 미국 전역이 비슷하다. 주택가의 한 블록이 묘지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공동묘지 주변 주택이 조용하다고 값이 더 나간다.

뉴욕도 최근 들어 묘지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5개 구 가운데 하나인 퀸스구는 묘지 신설이 금지됐고, 기존의 묘지도 백년 이상이 지나는 동안 거의 포화상태가 됐다. 사이프러스 힐스에는 45만기의 묘가 있는데 예전 방식으로 매장을 할 경우 앞으로 1만기 정도밖엔 여유가 없다. 1년에 3천기씩이니 3년이면 바닥이 난다.

묘지관리소는 이에 따라 성당같은 건물을 크게 지어 벽장같이 관을 넣고 밀봉하는 모설리엄(실내묘소)을 운영하고 있다. 건물의 크기와 관을 넣는 방법에 따라 매장 가능량이 크게 늘어난다. 마감재는 대부분 대리석으로 돼 있어 분위기를 한층 우아하게 해 준다. 또 오래전에 매장이 끝난 구역의 묘와 묘 사이 빈 공간을 이용하고, 한 층으로 하던 매장 방법을 세 층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죤 데스몬드 묘지관리소장은 “뉴욕주에서도 지금까지 제한이 없던 매장 연한을 75년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자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동부보다 인구밀도가 낮은 서부도 사정은 비슷하다.

뉴욕의 맨해튼처럼 샌프란시스코도 100여년 전에 콜마·오클랜드 등 소도시로 묘지를 이전하고 시내에는 묘지 조성을 금지해 현재는 한곳도 남아 있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 지하철로 20분 남짓 남쪽에 있는 인구 1280명의 콜마읍. 애완동물 묘지까지 포함해 18개의 묘지가 읍의 70% 이상을 차지한 `묘지 도시'다. 이들 묘지 가운데 가장 큰 `사이프러스 론 메모리얼 파크'는 실내 묘소와 납골당을 곳곳에 지은 것 외에도 최근에 야외에 100여기를 수용할 수 있는 벽장식 묘지를 완공한 데 이어 100여기의 수용시설 공사에 들어갔다. 서울역이나 버스터미널에 있는 코인락커 비슷한 형태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위티어시에 있는 로즈힐 묘지가 유명하다. 85여년전 18에이커의 동네묘지로 시작해 지금은 3000에이커(370여만평)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묘지가 됐다. 언덕 밑에서 시작해 꼭대기까지 거의 묘로 꽉 찼고, 이제는 언덕 너머 골짜기를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곳 묘지의 특징은 대부분 비석이 없이 평판을 쓴다는 것이다.

이곳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백 미터에 이르는 야외 벽식 묘지다. 흙을 파서 매장을 하는 묘지의 경계 굴곡을 따라 회랑형태의 건물을 지어 묘로 활용한다. 또 유골을 뿌릴 수 있도록 넓게 잔디밭을 조성해 놓기도 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도 묘지난으로 최근 화장률이 높아지고 있다.

북미화장협회는 96년 미국의 화장률은 21.1%였으나 이듬해에는 23%로 뛴 것으로 집계했다. 이 협회는 2010년이면 화장률이 40%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뉴욕주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만명이 화장을 해 18.7%를 기록했다. 96년의 16%에 비해 적지 않게 늘어난 것이다.

뉴욕 주정부 내무부 묘지과 검사관 레스 루블레스키는 “화장률이 점점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도시화의 영향으로 이사를 자주하고 옛날처럼 성묘를 자주하지 않는 현상이 일반적인데다, 교회가 화장에 대한 반대 태도를 누그러뜨렸기 때문”이라며 “젊은 층의 인식이 바뀐 데도 큰 요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김학준 기자

휴식공간 꾸민 화장장 곳곳에

일본 최대 번화가인 도쿄 신주쿠에서 전철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다마영원(공동 납골묘지). 7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 묘지에는 일본이 추구하는 새 장묘문화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설물이 하나 있다.

들머리 오른편에 있는 원형 실내체육관 모양의 납골당인 `미타마당'(영혼당)이 그것이다.

5년여의 치밀한 준비와 공사 끝에 지난 93년 10월 분양이 시작된 미타마당은 `좁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일본의 오랜 국가적 과제를 전혀 새로운 양식의 납골당으로 구현한 곳이다.

높이 19.95m, 지름 61m, 건평 3518㎡ 규모의 이 납골당 중앙은 실내체육관처럼 비어 있고 관중석에 해당하는 원 둘레에 라카 모양의 납골함이 6층에 걸쳐 빼곡히 둘러쳐져 있다. 30년 이상 장기 수장할 수 있는 납골 수가 모두 2만1840기이며, 1년 기한의 일시수장 가능 수는 7500기다.

대리석으로 만든 원추형 상징 분수가 있는 홀에서 올려다 보면 각 층 라카 앞의 모자이크 벽면만 올려다 보인다. 은은한 색조의 벽면과 24시간 잔잔하게 뿜어내는 분수 물줄기로 유족들은 마치 천국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구조다.

미타마당에서는 원형 건물 앞에 설치되어 있는 공동 참배대에서만 참배를 할 수 있다. 이른바 `간접 참배'다. 유족들이 홀 안에 들어올 수 있지만 참배는 할 수 없다. 유골이 보관된 라카 앞에도 접근할 수 없다. 단위 면적당 보관 납골 수로 세계 최대인 이곳에, 이를 허용할 경우 엄청난 혼잡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쿠라바 요우스케 다마영원관리소장은 “묘지 수요는 많아지는데 묻힐 곳은 점점 좁아지는 도쿄의 현실을 감안한 새 형태의 미래형 납골당”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그러나 “이곳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간접참배 방식은 개인 납골묘 앞에 직접 참배하는 일본의 전통적 참배 문화와는 아직 조화되지 않고 있다”며 “바로 이런 한계 때문에 미타마당의 현재 분양률은 50%를 밑돈다”고 한계를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의 땅 사정을 고려할 때 이런 형태의 납골당 조성은 이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덧붙인다.

지난 96년 일본 후생성이 발표한 일본의 화장률은 98.7%다. 도쿄의 경우 같은 해 숨진 8만898명 가운데 35명만이 매장을 했고, 나머지는 모두 화장했다. 일부 있는 매장도 섬 지방 사람들의 전통적인 풍습에 따른 것이어서 사실상 100%의 화장률이다. 일본에서는 “천왕만 빼고 모두 화장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후생성 통계에서, 일본의 화장률은 지난 1925년 43.2%, 50년 54%, 60년 63.1%, 70년 79.2%, 80년 91.1%, 90년 97.1%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도쿄도 유일의 도립 화장장인 미즈에장의소 하야시 나쓰코 소장은 “이런 화장률 증가는 화장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불교문화와 토지 부족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면서도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강력한 의지와 국민의 자발적 호응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일본은 일찍이 지난 48년 `묘지 및 매장에 관한 법률'을 통해 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 설립한 묘지에만 유골의 매장이 가능하도록 법제화했다.

신주쿠에서 전철로 15분 거리인 미즈에장의소는 주택가와 바로 붙어 있다. 60년의 전통을 가진 이 화장장도 지난 75년 증축 때 한차례 주민 반발을 맞았다. 도쿄도는 즉각 화장장 바로 옆에 대규모 어린이공원과 주민 문화관을 짓는 한편, 도로폭을 넓히는 등 주민 서비스를 했다. 이후 주민들은 근린 공원시설 정도로 화장장을 친숙하게 여기고 화장장 역시 섭씨 1200도로 태운 주검을 다시 800도로 연소해 다이옥신 등 공해와 연기, 냄새를 거의 0%에 가깝게 없앴다. 미즈에장의소 정문 바로 앞 가게 주인은 “화장장과 함께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도쿄 도심부의 메이지신궁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미나미아오야먀에는 일본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 도영 공원묘지인 아오야마영원이 있다. 지하철 역에서 불과 3~5분 거리다. 정문 앞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주택가가 펼쳐지고 뒤로는 고층빌딩들이 즐비하다. 벚나무가 울창해 가장 많이 이용되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시내 곳곳에 있는 사찰들은 신도들과의 유대관계를 위해 수백~수천기가 안장된 묘지와 납골당을 부속 시설로 마련해 놓고 있다.

도쿄 다마, 미즈에/김영철 기자

 "풍수, 산소자리 잡기 아니다"

근래 바람과 물 피해가 극성이다. 이른바 `풍수해'란 것인데, 그것이 무덤에까지 미치고 있다니 풍수를 전공하는 사람으로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의 이번 시리즈를 계기로 내가 중시하는 풍수사상이 땅에 대한 사랑이란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풍수를 단순한 `묏자리 잡기'로 믿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인 현실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된다.

사실 매장의 문제는 무덤들이 토지를 잠식한다는 데 있다. 땅이 넉넉하다면 매장이든 화장이든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매장에 따른 토지 잠식은 사실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불교가 풍미했던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지배층은 화장을, 일반 백성들은 매장을 주로 했다. 그러나 비석 같은 것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봉분이 없어지고 주검은 흙으로 돌아가 토지문제화할 소지가 원천적으로 없었다. 당시 화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부유층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늘 아래 임금의 땅 아닌 곳이 없던 시대이니 매장 터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화장을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땔감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어차피 매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초에 들어서면서 사정은 급변한다. 백성들은 여전히 가난했으므로 매장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배계층이 매장 선호로 돌아선 것이다. 세종 때 행부사직을 지낸 고중안이란 사람은 임금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명당을 차지하고 있어 그 양상이 몹시 무례한데다, 산천은 한도가 있사온데 이를 쓰는 자가 날로 많아져 수년만 더 지나면 마침내 쓸만한 땅은 없어지고 말 것”이라 했다. 그의 이 지적은 오늘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풍수 역사상 최고수의 자리를 차지했던 당나라의 일행선사도 이르기를 “오로지 부모의 유해가 편안함을 얻게 함이 풍수의 이치이니, 그 보람은 명당의 음덕을 입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모님을 편안히 모실 수 있느냐를 근심함에만 있는 것”이라고 했다. 명당이 자손들 덕 좀 보자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는 수많은 선인들의 지적으로 전해온다. 모든 일이 그렇듯 `편안함'이란 것도 상대적이다. 캄캄한 땅속에 묻히는 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을 끔찍한 일이라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장하는 광경을 한번이라도 구경한 사람이라면 주검의 부식 상태를 보면서 “저렇게 되느니 화장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화장장이나 납골당 같은 장묘시설을 혐오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화장을 하려 해도 시설이 부족하거나 저급하다면 장묘문화 개선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매장세 같은 것을 만들어 법이 정한 규모 이상의 묘지를 쓰는 상속자들에게 터무니없을 정도의 세금을 물려 이 재원으로 화장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주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무지막지한 세금을 내면서까지 법정 규모 이상의 묘지를 쓰려는 사람들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국립현충원(국립묘지)의 계급별 면적 차등도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주검의 처리에 관한 한 불평등은 없다는 확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묘지가 지닌 사회교육적 가치까지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부모와 조상의 무덤 앞에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어린 자식들에게는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가 돌아가신 뒤까지 저렇구나 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고, 좀 큰 자식들에게는 죽음을 생각할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화장한 유골을 흩어버리는 산골제도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유골함에 모셔 납골당이나 석실 고분 형태의 납골묘를 만들어 최소한 2대까지는 고인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런 까닭이다.

납골당이나 납골묘지를 음산한 곳이 아니라 앙명한 곳에 놀이동산식으로 만들어 어린 자식들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자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란하지 않은 놀이시설을 만들면 어린이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뿌리를 찾게 되고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화장장은 시설의 성격상 규모가 클 수밖에 없으나 납골당은 소규모의 공원 형태로 도시 근교나 산지, 유원지에 조성할 수도 있다.

문제 해결의 요체는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 것이며 죽음 뒤에도 산자들 곁에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은 망자를 편안하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아침의향기] 무덤 대신 우주로 가신 할머니  

최근 화장을 권장하는 장묘문화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다. 각계에서 '화장 유언 남기기'에 서명하고 있다곤 하지만, 지도자층 달리 말해 기득권층에서는 앞장서는 것 같지는 않은 분위기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간신히 남아 있는 자연마저 파괴해가며 묘터잡기와 묘터사기, 호화장묘와 불법장묘, 게다가 성묘 교통난 등 묘지강산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지경이다.

나의 경우 19, 20살에 외할머니의 화장과 어머니의 매장을 둘다 경험했다. 외할머니가 어머니보다 1년 앞섰으니 어머니와 함께 벽제화장터에서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모습과 불가마 속에서 나와 재가 된 할머니의 모습을 다 봤다. 인부가 습골하여 작은 쇠절구에서 뼈를 부수더니 나무상자에 넣어 어머니와 내 가슴에 안겨줬다. 할머니의 뼛가루를 안고 수유리 화계사 뒷산에 올라 어머니와 함께 나무 밑을 옮겨가며 골고루 뿌렸다. 한움큼 쥘 때마다 그때껏 식지 않은 뼛가루의 따뜻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알갱이가 만져지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뼛가루는 고왔고 부드러웠다. 냄새는 없었다. 할머니는 어디로 갔는가. 이 한줌의 가루가 할머니란 말인가. 알 수 없어라. 알고 싶어라. 할머니는 나무뿌리로 스며 화계사 뒷산 오리와 느티, 상수리를 살지게 한단다, 산흙 속으로 스며 흙 속을 기는 미물들을 살지게 한단다, 혹 바람에 날려 건너편 산벚과 피, 엄나무를 살지게 한단다, 아주 적은 얼마의 가루는 바람 따라 날려 어느 먼 마을로까지 찾아간단다, 아마 나는 그때 이런 누구의 목소리를 줄곧 듣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덤을 가지지 않은 할머니는 우주를 가졌다고, 지 수 화 풍 물질의 원래 4원소로 돌아가 허공 중에 연약한 기운으로나마 운동하고 있다고 제법 우주적 상상을 일으켰는지도….

화장의 체험과 그 체험의 정서가 나는 맘에 들었다. 가족, 무슨 씨성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우주주의자로 확장되는 것 같기도 한 것이. 나도 할머니처럼 죽은 뒤에는 당연히 화장이다. 서서히 진물을 흘리며 썩어가거나 끝끝내 산발한 머리카락, 해골바가지 따위는 남기고 싶지 않다. 이 몸뚱이 형성한 물질의 본래 모습 지 수 화 풍으로 재빨리 돌아가고 싶다. 자연훼손을 걱정해서도 비좁은 땅덩어리를 걱정해서도 후손들의 부담을 걱정해서도 아니다.

죽은 이들은 무덤으로써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닌 그 삶으로써 흔적을 남기는 것. 그 삶 또한 흔적없이 거둬갈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라고 언제부턴가 일찍 그런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시인 이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