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죽은 자가 산 자의 터전을 뺏을 수도"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31) 벌초를 하고서

박도(parkdo) 기자

추석은 예초기 소리에서

▲ 아우(박정, 광양제철)가 예초기로 부모님 산소를 가다듬고 있다.
요즘 추석은 예초기(풀 베는 기계) 소리에서 시작된다. 이른 아침부터 이곳 산골마을에도 예초기 소리가 요란하다. 추석이 가까워온 모양이다. 오늘은 추석을 한 주 앞둔 데다가 날씨조차 좋아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초가 한창일 게다.

나도 아우들과 함께 어제 새벽같이 고향 선산에 가서 꼬박 비를 맞으며 벌초한 후 돌아왔다. 벌초 객들로 고속도로가 엄청 막혔다. 해마다 겪는 연례행사로 길에서 고생할 줄 뻔히 알면서도 때를 놓칠 수 없기에 다녀왔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 봄여름 내내 자란 풀로 쑥대밭처럼 엉클어진 조상 산소의 풀을 말끔히 깎아주자 비로소 조상에 대한 최소한의 자손 노릇을 하였다는 흐뭇함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제 우리나라의 이런 묘지 문화를 다시 심각하게 재고하여 일대 개혁해야 할 시점에 이르지 않나 싶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 간다'는 말처럼 죽은 후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돌려보내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이제까지 이런 관습이 죽 내려왔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사람이 죽으면 땅에다 매장하는 묘지 문화였다.

그런데 이 매장 문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묘지는 자꾸 늘어나는데 땅은 늘어나지 않는 데다 죽은 사람도 평등하지 않고 사후에도 그 묘지로 차별받는다는 점이다. 후손들이 그 묘지의 호화로움과 장식물(비석 비문 등)로 은연중에 집안을 과시하거나 그것으로 행세하는 풍토가 없어지지 않는 한 묘지문화의 개혁을 백 번 부르짖어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장묘공원 묘지, 한 기당 면적이 매우 좁다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묘지는 약 2천만 기로, 그 넓이는 서울시의 1.6배인 약 3억 평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해마다 묘지 20여 만기가 늘어나서 전국 공장 부지의 세 배가 넘는 토지가 묘지로 바뀐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10년 후에는 집단묘지 공급이 바닥이 나고 50년 후에는 이 땅 어디에도 묘지를 쓸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차창으로 주변을 살펴보면 야트막한 남향받이 야산들은 거의 묘지가 차지하고 있다. 도시 가까운 곳의 공원묘지도 가 보면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산 아래에서 거의 꼭대기까지 묘지가 들어서서 온통 묘지로 산을 덮고 있다. 폭우라도 내려 산사태가 나면 축대가 부실한 묘지들이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허물어져서 시신을 찾지 못해 소동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지기 일쑤다.

그나마 공원묘지 사용료도 엄청나게 비싸서 어떤 이는 멀쩡한 밭을 사서 가족 묘지로 쓰는 일이 더 경제적이라고 편법으로 사들이고 있다. 이렇게 내버려두다가는 밭조차 묘지화해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자들의 삶의 터전이 야금야금 잠식당할 것이다.

지도층의 호화분묘

해외를 다니면서 각 나라의 산을 둘러봐도 우리나라와 같이 묘지로 뒤덮인 나라가 없다. 파리에는 도심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마치 조각공원 같았고, 이웃 일본은 마을 곳곳이나 집안에 납골당이 세워져 있었다. 또 사찰 뒤 울창한 숲에다 화장한 뼛가루를 뿌리기도 한다고 했다.

▲ 일본 교토 교외의 납골당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공원묘원에서 본 바, 그 넓은 나라에서도 1기당 묘지 면적이 한두 평 정도로 매우 좁은 데다가 모두 평장으로 쓰고 묘비도 간단했다.

고인의 이름과 출생연도와 죽은 해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이(주로 가족으로, 부인 또는 남편 자식 또는 부모)만 새겼을 뿐이다. 마침 그곳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을 곁에서 지켜봤더니 가족 중심으로 아주 간소했다.

프랑스에서는 드골 대통령 무덤의 묘비마저도 본인 이름과 출생, 사망 연도만 새겼다고 하니 그들의 평등사상과 인류의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은 정말 선진국답다.

히말라야의 티베트계 주민이나 인도 봄베이를 중심으로 사는 파르시족은 조장(鳥葬)을 한다는데 새가 시체를 파먹게 하여 처리케 하는 장례문화다.

사람이 사는 동안 무수한 동물들을 잡아먹었으니 다시 그들의 먹이로 되돌려주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깊은 종교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그들의 풍습을 야만이라고 폄하할 게 아니라 자연 회귀사상으로 곰곰이 음미해 볼 일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이 내린 유교문화, 그 중 조상 숭배에 대한 절대적인 사상은 아무나 손대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그 폐단을 알면서도 과감히 고치지 못하는 것은, 자칫하면 천하에 불효막심한 자손으로 매도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우고면, 이리저리 눈치 보다가 재래의 문화를 답습하고 만다.

이런 오래된 인습의 묘지문화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서 개혁해야만 백성들이 따라갈 텐데 그들이 더 호화분묘를 꾸며서 개혁은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치게 하고 있다.

역대 여러 대통령들이 대통령이 된 후 조상 산소를 호화롭게(심지어는 어떤 이는 헬기장까지) 꾸미거나, 조상 산소를 잘 써야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풍수지리설 때문인지 후보 이전에 미리 호화분묘를 만드는 판이었으니 어찌 묘지문화가 개혁될 수 있었겠는가?

매장 묘지 풍습 바꿔야

몇 해 전, 항일유적 답사 길에 중국 베이징에서 한 독립 운동가를 만났다. 그때 93세 고령이신 그 어른은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셨다.

지금의 매장 묘지 풍습을 바꿔야 한다. 오늘날 매장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모택동 주석이나 김일성 주석도 죽은 후에 화장하지 않고 안전관에 모셔 두고 있는데 인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몰라도 앞으로 100년이나 1000년이 지난 다음에는 분명히 잘못된 일로 판명될 것이다. 한 줌의 재로 날려버린 주은래, 등소평 주석이야말로 얼마나 멋진 선각자인가.

호화 분묘를 만들고 비석을 세우는 일은 다 소용없는 일이다. 후손을 위하여 화장하는 게 옳다. 나는 이미 부모와 처를 모두 화장했고 나도 화장하라고 일렀다.


▲ 서구인들의 간소한 무덤과 묘비명
어제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선 우리 집부터 묘지문화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천을 하게 될지 섣불리 장담할 수는 없다.

나 혼자의 생각만으로 조상의 묘지를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 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묘지문화의 개혁에 공감할 줄 안다. 이럴 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여 국토 백년대계를 위한 새로운 묘지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바른 생각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도자라면 바른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야 하지 않을까?


2004/09/19  박도(parkdo) 기자

오마이뉴스 

 

티벳의 독특한 장례 문화 '천장(天葬)'

 

지친 영혼, 비로소 하늘에 잠들다

 

조금은 섬뜩한 질문 하나. 당신은 당신의 사후 처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든지, 화장이라든지, 장기기증이라든지, 생을 마감한 당신의 육신을 처리할 방법과 당신의 죽음을 추모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 천장대가 위치한 산꼭대기.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서식하고 있다.

 


티벳인들의 일반적인 장례법 중 하나인 천장을 보고 왔다. 라싸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드리쿵 사원으로 출발한 시간은 새벽 4시. 오전 8시에 시작하는 장례 시간에 대기 위해서이다.

사방은 어둠에 잠겨 있고 차는 끊임없이 덜컹거렸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을 보러 가는 길, 더구나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는 낯선 의식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었다. 긴장과 두려움을 애써 떨치며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천장(天葬, sky burial)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새들의 먹이로 내주는 장례법이다. 우리가 흔히 조장(鳥葬)이라고 알고 있는 장례법은 시신을 높은 나무 위에 오랜 시간 방치해 새 또는 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하는 방법으로, 사람이 직접 시신을 잘게 나누어 여러 마리의 새들이 짧은 시간에 먹도록 하는 천장과는 조금 다르다.

오전 7시가 조금 못 되어 드리쿵 사원에 도착했다. 아침 햇살이 밝아오자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사원과 탈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8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드리쿵 사원은 문화혁명 시기에 피해를 적게 입은 사원 중 하나로, 본래 모습을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해발 4800m 고지에 위치해 있으며,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서식하는 뒷산에 천장대를 갖추고 있다.

 

▲ 날개를 완전히 편 독수리의 몸집은 작은 소 한 마리와 크기가 맞먹는다.

 


 

▲ 드리쿵 사원 전경.

 


젊은 승려들이 바쁘게 오가며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 사원을 뒤로하고, 천장대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사원을 빙 둘러 산꼭대기까지 이르는 '코라'를 따라 30분 정도 오르니 파란 하늘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다.

날개를 펴고 하늘을 가르는 독수리들이 한두 마리씩 보이는가 싶더니 산꼭대기에는 벌써 수많은 독수리들이 모여 앉아 있다. 독수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천장대가 차려져 있다.

천장대를 둘러싼 철조망에는 영어와 중국어와 티벳어로 씌어진 "사진촬영 금지" 푯말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바윗돌을 동그랗게 늘어놓은 중심 제단에는 나무 밑동을 깎아 만든 커다란 도마가 여러 개 눈에 띈다. 벌써부터 심장이 오그라든다.

 

▲ 천장대 한켠에 놓인 스투파. 천장사들은 스투파를 시계방향으로 빙빙 돌며 의식을 준비한다.

 


 

▲ 탈초를 곧쳐 세우는 노스님. 경전이 시작되면 승려들은 향을 피우고 경전을 외운다.

 


시간이 흐르자 천장을 행하는 천장사 두 명과 노스님 한 분, 그리고 젊은 승려 두 명이 나타나 분주히 의식을 준비한다. 천장사들은 먼저 스투파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몇 바퀴 돌더니 긴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갈기 시작한다.

이윽고 자루에 든 운구를 들쳐멘 사람들이 나타나고, 독수리들이 한두 마리씩 천장대 안으로 모여든다. 철조망 바깥에서 보게 되리라는 예상을 깨고, 노스님의 손짓을 따라 우리는 중앙 제단 바로 앞에 모여 섰다. 이렇게 가까이서 볼 필요까진 없었는데. 또다시 두려움이 앞선다.

자루에서 꺼낸 시신 두 구는 천장사들에 의해 저미어지고 헤쳐진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시신을 알맞게 조각 내 펼쳐놓자, 수백 마리의 독수리들이 한꺼번에 몰려 덤벼들기 시작한다. 앙상한 해골만 남기고 시신 두 구가 완전히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 채 안 되었다.

천장사들은 남은 근육과 살점을 독수리들이 완전히 먹도록 도운 다음, 해골을 잘게 부수어 밀보리 가루와 섞어 다시 던져 준다. 목숨을 다한 두 구의 시신은 남김없이, 완전하게 새들에게 먹이가 되는 셈이다.

천장을 보러 온 여행자들은 의식이 시작된 지 몇십 분만에 대부분 자리를 뜨고 없다. 의식이 진행될수록 처음 가졌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이 낯선 광경 앞에서 나는 저 익명의 망자들이 살았던 짧은 생을 상상한다.

척박한 땅에서 무거운 생의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았을 사람들. 무거운 육체로 한없이 낮은 곳으로 가라앉아야 했던 사람들. 생을 마친 이들이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을 얻기 위해 제 몸을 날것들에게 보시하고 있다. 새들에게 통째로 집어 먹히는 사람들. 쓸모 없어진 육신을 온전히 새들의 먹이로 내놓는 사람들.

티벳에서는 천장 외에도 매장이나 화장 등의 장례가 함께 행해진다. 그러나 한랭건조한 기후 때문에 땅 속에서 시신이 쉽게 썩지 않으며, 일부 지역을 제외한 티벳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목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화장도 널리 행해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천장은 가장 빠르고 깨끗하게 운구를 처리하는 방법.

자연 환경에 따라 발달한 장례법이지만, 천장은 티벳인들의 불교적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다. 육신은 쓸데없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기 몸을 살아 있는 짐승들의 먹이로 내주고 다음 생의 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의식이 끝나갈 때쯤 천장대에 남은 여행자는 우리 둘 뿐. 철조망 바깥에서 일본인 한 명이 사진촬영을 시도하다가 저지를 받는다. 천장의 장면이 외부에 비추어진다면, 시퍼런 칼로 사람의 몸을 베고 있는 천장사의 모습이 달랑 사진 한 장으로 찍혀져 있다면, 아마도 엽기적인 화젯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살 것이 분명하다. 자신들의 문화와 세계관에 대한 이해 없이 야만적인 장례 풍습으로 비쳐질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천장을 보고 온 날, 이상하게도 기력이 빠져 움직이기가 힘이 들었다. 숙소에서 꼼짝없이 앉아 쉬면서 삶과 죽음을 곰곰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얻기 위해서 쓸모 없어진 육체를 온전히 보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무엇이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생명에게.

 

▲ 하늘을 가르는 독수리의 모습.

염미희(salt23) 기자

 

2004.7.2 오마이뉴스

 

국립묘지 발전위,대통령 묘역 80평→20평,장군 8평→1평으로

 

이르면 2005년 하반기부터 1기당 80평 규모로 조성돼 왔던 국립묘지 내의 대통령 묘역이 20평으로 축소된다. 또 1기당 8평의 면적을 사용,‘한 번 장성은 죽어서도 장성’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던 장군 묘역도 1평으로 줄어든다.

 

국방부와 국립현충원 관계자는 29일 “국립묘지발전위원회가 최근 이 같은 합의안을 확정했다”며 “향후 정부안 확정과 국립묘지령 제정 작업 및 국회 통과 등의 절차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시행 시기는 빠를 경우 2005년 하반기가 되겠지만 2006년 1월로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서울 동작동에 소재한 국립현충원은 만장된 상태이나 대전 현충원에는 1기당 80평 규모의 대통령 묘역 8기(640평)가 조성돼 있다. 또 1기당 8평 규모의 장군 묘역은 1517기가 조성돼 있으나 이 가운데 539기는 이미 안장이 완료됐고 남은 978기(7824평)는 앞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국립묘지발전위의 안이 확정되면 대통령 묘역은 1기당 면적이 20평으로 줄고,장군 묘역은 모든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와 마찬가지로 1평으로 축소된다.

 

다만 법령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장군·애국지사 등의 경우 현재와 마찬가지로 8평 규모의 묘역에 안장된다.

 

대전 현충원측은 앞으로 20년 후면 만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서울 국립현충원은 2005년 상반기까지 공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에 따라 지난 3월 말 3개 동 규모의 납골 시설인 충혼당 건립을 위한 기공식을 가졌다.

 

이와 관련,현충원 관계자는 “앞으로는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되기를 원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조건에서 충혼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며 “건전한 장묘문화 정착과 권위주의 시대의 퇴조를 의미한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재기자 djlee@kmib.co.kr

 

국민일보 2004.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