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기조실장)



        일본과 미국, 하와이에 있는 장묘시설 일곱 곳을 방문하고 느낀 것은 죽음을 대하는 문화적 구조가 대단히 상이하며, 또한 매우 합리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번 연수는 전 국토를 묘지화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장묘문화를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점들을 시사해 주었다.


    수채화 같은 누아누 묘지

        6월27일 우리 일행은 아침에 하와이 호놀룰루의 누아누 묘지를 방문하였다. 높고 파란 하늘, 흰색 구름과 어우러진 누아누 묘지는 파란 잔디위에 비석을 대신한 평판 옆의 황동 꽃병에 망자를 기리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웠다. 1층 사무실로 들어서니 흰색 와이셔츠에 검정바지 차림인 정갈한 모습의 일본계 미국인인 매니저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통역은 가이드가 있었지만 묘지에 대하여는 현지인들도 모르는 전문용어가 많아 별도의 가이드가 통역을 맡아 주었다.

    도심 한복판의 묘역전경

    기품있는 장의용품들이 유족의 마음을 위로

        관을 전시한 곳을 지나 시신을 안치한 곳으로 안내되었는데 4-5평되는 공간에 커다란 냉동실이 있었다. 매니저가 냉동실 안을 볼 것인가를 물어본 후에 문을 여니 하얀 천에 덮여진 시신이 4구가 있었다. 바로 옆에는 시신을 소독하고 화장(化粧)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 그 곳에 들어가니 20여평되는 공간에 하얀 천으로 가려진 시신이 계단침대와 같은 곳에 층층이 안치되어 있었고, 문 앞에는 시신을 염하고 얼굴을 화장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시신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2년 과정의 학교를 마치고 자격증을 가져야 하며 학교에서는 방부처리에 대한 공부를 한다고 한다.


    다양한 형태의 기품있는 납골함들


    불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장례식장

    유족의 종교의식을 배려한 공간활용

        다음에 간 곳은 망자의 친지들이 모여 예식을 치르는 교회의 예배당 같은 장례식장이었는데 정면의 벽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벽이 여닫이 문 형태로 되어 있어 문을 여니 불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기독교와 불교가 문 하나사이를 두고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모습이었다. 한편으론 망자에 대한 종교적 의식이 너무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공간 활용에 대한 미국인의 합리성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편안한 차림의 성묘 행렬

        장례식장을 나와 잔디묘역을 지나는데 한 무리의 미국인들이 성묘를 왔다. 이들의 옷차림이 마치 집안에서 돌아다닐 때 입는 간편한 반바지나 반소매 차림의 옷들이었는데 성묘를 하러 온 사람들 답지 않게 엄숙한 모습은 찾기가 어려웠다. 물론 죽을 당시의 슬픔이 사라진 후라 그런가 보다. 일본에서 본 장례행렬은 대단히 엄숙하고 유족이 슬픔에 가득 차 있었고, 미국도 매장 당시의 장례행렬은 무척이나 슬프게 보였다. 그리고 한쪽 구석 묘역에는 동양인인 노인 한분이 정성스럽게 꽃을 손질하여 황동 꽃병에 꽂고 있었다. 아마도 죽은 남편의 무덤인 듯 하다. 이들에게 있어 죽은 자와 산 자가 살아가는 곳의 영역이 우리처럼 확연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우리 사회에 있어 죽은 자의 영역은 살아 있는 자와는 공간적인 격리 뿐만 아니라, 생활 영역에 있어서도 완전한 격리를 뜻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묘역은 산 속에 격리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옥외 Mausoleum


    화장장의 망고 열매를 주워 나누어 먹으며

        다음으로 납골당을 방문하였다. 가로 세로 약 30cm의 쇼윈도우 같은 유리벽 안에 청동으로 된 네모형, 원추형 등의 납골함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시신을 관 안에 넣고 벽면에 안치한 특이한 형태의 묘지도 견학을 하였다. 뒤로 돌아나오니 조그만 화장장이 하나 있었다. 옆에는 주렁주렁 열린 망고나무가 있었고 잘 익은 망고가 떨어져 있어 주워 가지고 나와 일행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전혀 비위생적인 생각은 들지도 않았고 어느 집 정원이나 산에서 떨어진 열매를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묘역 전체가 주는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21세기에 걸맞는 장묘문화 모색해야 할 때

        누아누 묘지의 전체적인 스케치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것과,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시설이라는 것이다. 한 국가의 장례문화는 한 민족이 자연과의 생활,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경험한 문화적 산물이라면 일본과 미국은 현재의 상황에 맞게 죽음을 재해석하고 장례문화도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개선하는데 성공한 듯 하다. 우리사회의 장례문화중 심각한 것은 토지의 잠식과 공간이용의 비효율성에 있다 할 것이다. 마치 공원처럼 만들어진 묘역에서 산 자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죽은 자의 모습은 우리사회의 장례문화를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우리의 장례문화가 앞으로도 매장관행으로 계속된다면 산 자의 공간도 위협받게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죽은 자를 위한 시설이 혐오시설로 받아들여지는 한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한을 품은 처녀 귀신이 나오는 공동묘지, 그것이 우리 장묘문화의 이미지가 될 것이다. 한 국가의 문화가 민족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이제 우리의 정체성은 21세기에 걸맞게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묘지가 국토를 잠식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새롭게 변하지 못한다면 21세기 세계화시대의 경쟁에서 우리는 패배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살아가는 곳, 그 곳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