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섭 (강동/송파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변화를 빠르게 수용할 뿐만아니라 진보시켜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

        환경이라는 주제가 부동의 사회적인 위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부터 그간 우리의 사회 및 생활전반에 미치거나 인정되었던 모든 현상들에 대한 점검과 새로운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개인에서부터 지역, 국가, 지구촌등 환경이라는 주제는 이의 단절성을 넘어 상호보완성, 상호균형성 등의 문제로 승화되면서 최근 자주 회자되고 있는 ‘상생’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그것도 인간 스스로가 제기하는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의 어떤 강제, 즉 이런 상태로 자연을 파괴한다면 공멸할 것이라는 문제제기는 인종, 국경, 계급을 넘어서서 그 모든 인간들에게 제기하고 있고 또한 그 누구도 예외란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환경은 독자적인 어떤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회, 경제, 문화, 관습등 사회전반에 미치는 어떤 행위의 근간과 기조가 되고 있다고 얘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는 주로 국물이 이용되는데 음식물쓰레기라는 환경적인 문제가 부각되지 않을 때에는 이 음식문화가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견해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쓰레기 대란 등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되면서 음식문화를 개선하거나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이렇듯 우리는 환경을 의식하지 않거나 도외시하면서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나 활동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환경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이를 점차 의식하면서도 사회전반에 미치는 실제 영향력은 아직도 미비하다. 물론 사회적인 시스템이나 인간의 의식을 어떤 필요성에 의해 일거에 개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렇다하더라도 변화의 필요성이 불가피한 시점에서는 그 변화를 빠르게 수용할 뿐만아니라 진보시켜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럴때만이 사회적인 우수성이 인정되고 국가의 정신적인 건강함이 보장된다.
        이러한 시각속에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제문제를 검토하고 점검해야 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문제가 분명히 있는데도 이러저러한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여 조금더 있다고 하자, 좀더 생각해보자 라고 하는 순간 사회 중심적인 시스템의 작동을 통해 무자비하게 환경을 파괴하고 난 다음이 되고 만다. 이러한 문제는 특별히 전문가들의 눈에만 비춰지는 것이 아니다. 불과 1∼2년 전에는 울창한 숲과 녹지였는데 어느순간 건물이 들어서고 황폐한 아스팔트, 콘크리트 숲으로 바뀐 모습에 대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대단위 가족묘(선산)를 조성하므로써 산림파괴와 환경파괴는 나날이 확산되고

        환경문제를 다룰 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활전반이 우리의 생존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를 가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일상생활이라함이 의식주에서 출발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문화, 관습등의 지평으로 확대되면서 생활패턴이 사회적인 메카니즘을 형성하면서 전통으로까지 유지·발전되고 있다. 전통은 국가나 민족, 사회의 특수함을 반영하면서 타 국가나 민족, 사회와는 다른 차별성을 갖게되면서 그 민족의 고유한 문화나 관습이 있음을 증명하게 된다. 이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로는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 전통은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정립해야 할 가치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빠르게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고루하고 낡은 정신적인 유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환경이라는 절대적 중요성이 확인되고 모든 사회적인 활동의 근간과 기조로 자리매김해야하는 엄중한 시점에 서있고 환경은 어떤 국가나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것에 비춰볼 때 전통과 문화는 환경이라는 보편적인 원리에 맞는 적용과 변화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딜레마중의 하나가 전통문화로 계승되어 온 장묘문화를 비롯한 생활전통의 문제점을 치유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지만 이를 손대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전통문화가 특정 계층이나 계급에게 향유되고 있다면 문제는 다르지만 양적인 차별성외에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이를 향유하거나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개선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이럴수록 우리는 가장 원칙적인 태도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분명하다는 점에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설득이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민족의 장묘문화는 매장과 봉분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산지를 이용한다. 인구가 많지 않을 시에는 산림파괴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대규모 매장위주 공원묘지가 들어서고 조상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 대단위 가족묘(선산)를 조성하므로써 산림파괴와 환경파괴는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산림파괴는 산림의 수원함양 기능을 빼앗게 되어 지하수의 고갈로 연결되고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물문제에 대해 해결불능의 상태로 빠뜨린다. 또한 산림의 지속적인 파괴는 자연재해에 대한 대체능력을 상실케 만든다. 얼마전 팔당상수원 주변 공원묘지가 장마로 인해 붕괴되면서 상당수 시신이 우리가 먹는 식수원지에 그대로 유입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의 경우 식량확보를 위한 산림개간이 자연재해앞에 국토와 사람 모두 초토화되면서 급격한 국가적인 위기상태를 맞은 사례에서 보듯이 환경의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고 있다.

    대체가능한 합리적인 장묘문화운동은 더욱더 확대되고 실천되어야

        만약 국토가 크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다면 환경의 강조가 지니친 기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국토가 비좁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된 나라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전통과 문화는 그 시대의 절대적인 필요성에 의해 변화가 불가피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의 장묘문화인 매장과 봉분문화가 가장 긴 시기를 유지하여왔지만 그 이전에는 고인돌 장묘문화라는 것도 있었다. 물론 고인돌 장묘문화보다는 보다 발전적이고 인간성이 배려된 것이 현재의 장묘문화라고 볼 수는 있지만 이 문화가 절대불변의 문화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현재의 장묘문화가 비주류 당시에는 주류인 다른 장묘와의 끊임없는 충돌과 의견이 진행되면서 점차적으로 주류의 장묘문화로 정착되어간 시대상황을 예측해본다면 현재의 장묘문화가 설사 부동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체가능한 합리적인 장묘문화운동은 더욱더 확대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문화의 변천이 충돌이 없는 자연적인 변화는 극히 드물다. 한 문화가 지배적이고 중심적인 문화일 경우 다른 이질문화가 초기에는 매우 접근이 어렵고 힘들지만 이 두 문화간의 끊임없는 충돌과 대립이 진행되다 보면 일정한 시점에서는 이질문화가 중심적인 위치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현시대는 그런 문화적 변화의 불가피성이 자리잡아가는 초기의 단계일 수 있다. 장묘문화만 보더라도 이미 매장이 아닌 화장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의미가 있다. 설사 경제적인 원인과 실용적인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하더라도 환경과의 관련에서나 그밖에도 충분히 변화의 근거와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는 점이다.
        환경파괴적인 사회적 관습과 전통, 문화는 그대로 존치되거나 존속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전통은 고착된 유물이 아니다. 시대의 필요에 따른 합리적인 개선과 변화가 진행될 때 비로서 그 민족의 전통이 살아있고 합리적인 정체성이 유지된다. 건드리기가 미묘하다고 해서 장묘문화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유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미 변화하고 있고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면 과감히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 화두가 필요하고 담론이 필요하다. 누가 이제 이 무거운 짐을 메고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