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각 (흥사단 부이사장)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여 매장을


LA 디즈니랜드에서

        30년도 더 지난 오래 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던 날. 우리 형제들은 전통적인 유교의식에 따라 장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집안의 전통이 가미된 장례 준비로부터 장례가 끝날 때까지, 사실은 모든 일들이 전적으로 집안 어른들의 의사에 따라 착착 진행됐다. 어린 우리는 깊은 슬픔에 빠져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장례 절차에 따라 대과 없이 상을 치를 수 있었다. 분주하고
    복잡했던 장례를 치르고, 삼오제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가운데 생전에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죽거들랑 절대로 화장하지 말 것’을 수 차례 강조하셨던 사실을 기억해냈던 것이다. 경황 중에 있었으므로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여 매장 할 겨를이 아니었으나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마지막 효(?)를 행한 결과로 나타났다.

    돈을 모아 석물을 설치하고, 잔디를 새로 심는 등 온갖 노력을

        어머니께서는 왜 그런 걱정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니, 어린 내가 어머니 생전에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했으며, 그 중에 집안의 장례문제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떻든 그 후 나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의 자식들에게 어머니와 똑같은 말(유언 아닌 유언)을 하게 되었다. 산소의 위치 선정과 묘비명, 봉분을 치장하는 법이며, 잔디를 잘 관리하는 방법… 등등 좀더 세부적인 일까지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6년 뒤 어머니 곁으로 가신 아버지를 쌍분으로 어머니 산소 옆에 모시게 되면서, 아이들에게 보란 듯이, 형제들과 상의하여 돈을 모아 석물을 설치하고, 잔디를 새로 심는 등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 이전에 어머니 산소도 한 번의 이장은 있었다.

    그러나 황량한 벌판에 내팽개친 산소와 같이

        선산이 서울에서 고속도로로 2시간 거리(교통체증이 없을 경우)에 있었음에도 남들보다는 자주 성묘를 다닌다고 다녔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부모를 뵙는 기쁨에 고향의 선산을 자주 찾았다. 기회만 닿으면 잔디를 보수하거나 새로 심기도 했고, 좋은 나무도 가져다 심었으며, 열심히 가꾸면서 묘지환경에 나름대로의 심혈을 기울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어쩌랴.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님에 대한 죄스런 마음이 커지는 것을. 내딴에는 그렇게 정성을 드렸건만 그야말로 황량한 벌판에 내팽개친 산소와 같이 갈 때마다 잔디가 잘 자라기는 커녕 잡풀만 우거져 있었고 산소의 일부가 파손되어 있음을 자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족 납골당을 지었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그럼에도 산소관리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여건이 되지 않으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었다. 부모님 묘소관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속수무책일 뿐이었던 것이다. 머리 속으로만 석축을 쌓는다든가, 나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들을 골똘히 생각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급기야는 화장을 한다면?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사후 몇 년 동안만 매장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화장을 한다든지 하는, 조금은 진일보(?)한 독자적 장묘 제도를 생각하게까지 되었다. 곁들여 가족 납골당을 지었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상념만 있었지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런 진척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한국적이면서도 청결하고 평화로우며, 가까워서 자주 찾는 친근한 곳으로

        그런데 이번에 LG상록재단의 도움으로 선진국 장묘문화를 관찰하면서 아름다운 우리의 터전인 금수강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통하여 기왕이면 산 자와 죽은 자가 더불어 사는 환경친화적인 장묘문화가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야말로 한국적이면서도 청결하고 평화로우며 가까워서 자주 찾는 친근한 곳으로 만들 결심을 갖게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여의도 만한 넓이의 땅이 죽은 자의 터전으로만 개발되지 않고 산 자와 같이 유익하게 이용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개인은 물론 공동체에도 유익한 장묘문화 개선에 많은 이웃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하와이 폴리네시안 민속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