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 개혁-외국과 외국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묘지문화

일본-도심 주택가 한복판에 화장시설 
베트남-'혁명영웅'묘엔 향연기 '추모'만
독일과 프랑스-유명도 업적도 묻는 조촐한 '땅속'
미국-케네디묘 치장않고 이름만...

이자료는 한겨레에서 복사하여 재편집한 것입니다.

일본-도심 주택가 한복판에 화장시설 

일본 도쿄도 다치가와시 주택가 한복판에 아담한 시설이 하나 있다. 화장시설인 `다치가와 성원(聖苑)'이다.

다치가와 성원은 대지 761평, 건평 379평의 2층 건물로 1층엔 마지막 고인을 보내는 예식을 할 수 있는 고별실 2개와 화장 뒤 유골을 수습하는 수골실(收骨室)이 각각 2개씩 있다. 2층에는 화장을 기다리며 간단한 차나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대합실이 양식(의자형)과 일식(다다미형)으로 각기 2곳 있다. 1층 입구 우산꽂이대, 2층 대합실 로비 미술작품, 대합실 사이 잘 가꾸어진 정원 등 유족과 조문객을 세심히 배려한 흔적이 배어 있다.

다치가와 성원은 1945년부터 다치가와시 단독으로 운영해오다 인근 구니다치, 아키시마시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면서 1985년부터는 아예 이들 세 도시가 공동으로 조합을 형성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시설은 1997년에 착공해 1998년 완공해 하루 평균 160건의 화장을 한다.

화장장이 시 외곽으로 '추방'되지 않고 도심 주택가 한복판에 살아남기까지 어려움이 적잖았다. 관건은 환경문제였다. 화장장쪽은 무연·무취·무분진과 다이옥신 처리가 가능한 촉매처리장치 및 자동연소 화로 등 최첨단 시설로 바꿨다.

재건축 과정에서 5년 동안 공청회를 20여회 열면서 시민들 협조를 이끌어냈다.

운영 역시 시당국이 앞장서 하고 있다. 3개시에서 2명씩 모두 6명의 시의원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유지·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을 결정한다. 화장장 근무직원은 조합소속 공무원 단 3명뿐이다. 나머지 청소와 시설물 관리는 전문회사가 위탁관리하고 있다. 재정부담은 전체의 20%를 3개시가 1/3씩 공동부담하며, 나머지 80%는 이들 시가 인구비례에 따라 분담한다.

다치가와 화장장의 성공은 한마디로 친환경적 최첨단시설과 `화장장광역화'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민들은 설명한다.

도쿄엔 다치가와시 외에도 도심 8곳, 외곽 8곳 등 모두 16곳에 화장장이 있다. 12곳의 화장장이 있는 중국 베이징엔 5곳이 도심에 위치해 있다. 서울은 주민반대 등으로 새 화장장 설치가 계속 지연돼 경기 고양시에 1개가 있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화장장은 전국적으로 45곳. 그러나 60% 이상이 60-70년대 설립된 까닭에, 시설이 낡고 이용객 서비스가 떨어져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꼽힌다.

1990년대 이후 신축 또는 개축된 지자체 부설 화장장은 △부산 △제천 △군산 △광주 △수원 등이 고작이다. 주민들의 님비현상을 이유로 자치단체가 뒷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보건대 이필도 교수(장례지도학)는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고 이용율을 높이려면 화장장 설치를 광역화하고 시설 현대화를 이루는 게 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편집시각 2001년01월08일23시02분 KST 한겨레/사회

이상기 기자amigo@hani.co.kr

   

베트남-'혁명영웅'묘엔 향연기 '추모'만  

베트남 호치민시 외곽에 있는 국립묘지 한 가운데는 혁명전사들을 기념하는 거대한 조형물이 서있다. 베트남전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위한 진혼비다.

하지만 정작 `혁명영웅'들의 묘지는 그리 크지않다. 묘지광장 중앙에 자리잡은, 응우엔 흐후 토의 묘지는 가로 4m, 세로 5m 정도의 크기다. 주검을 묻은 땅 위에 석관 모양의 돌장식을 놓는 베트남 특유의 묘지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응우엔 흐후 토는 국가주석을 지냈던 베트남 공산당 최고위급 간부다.

비석엔 `동지 응우엔 흐후 토 국가 주석 역임, 국회 주석 역임, 임시 혁명정부 고문 역임, 민족전체회의 주석 역임' 등 그의 생전 직책만 간단히 적혀 있다. 공적비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추모인파가 피우는 향냄새만 묘지 주위를 감싸고 있다.

이 국립묘지는 공산당 간부 뿐 아니라 일반인도 원한다면 누구나 묻힐 수 있어 일년 내내 추모객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호치민시 중심부에서 택시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가장 유명한 사람의 묘로 가자”고 했다. 운전기사들은 아무 주저없이 응웬 티도의 무덤으로 갔다.

호치민시 고법군에 있는 `의장예사' 공동묘지. 예능인들이 주로 묻힌다는 이 공동묘지 한쪽에 응웬 티도의 무덤이 있다. 그의 묘지 역시 한평이 채 안됐다. 응웬 티도는 베트남 남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여성 혁명열사'로 92년 숨졌다.

석관 모양의 조형물 한가운데에는 흙을 씌워 꽃과 나무를 심을 수 있게 돼있다. 거기에 정성스럽게 보살펴진 조그만 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우리와 같은 유교문화권인 베트남에도 물론 규모가 크고 화려하게 꾸민 `호화분묘'가 한때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로 바뀐 뒤 모두 정리됐다고 묘지 관리인은 전했다.

레 티 리엥 공원. 8월혁명의 거리 옆에 있는 이 공원엔 휴일을 맞아 가족과 연인들이 나와 쉬고 있었다. 이곳은 본래 호화묘지가 많던 공동묘지였으나 88년 공원으로 변했다고 한다.

공원 관리인은 “도시는 커지는데 청·장년들이 쉴 곳이 없어 공원을 조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속내는 호화묘지를 정리하기 위한 구실이라는 귀뜸이다.

호치민시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호화분묘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조그마한 묘지 앞에 놓인 향로의 향불과 향내음이 추모객들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베트남에서는

가로 2m, 세로 3m. 베트남 정부가 정한 1인당 묘지의 최대 규격이다. 이는 베트남인들이 `한 사람의 영혼이 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규모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모든 묘지는 국가에서 관리한다. 땅값은 1인당 묘지터가 60만동. 우리 돈으로 5만원 정도다. 매장비용은 20만동 정도로 우리 돈으로 1만6000원 가량. 가족용 묘지터를 사놓을 수도 있다.

묘지관리도 국가에서 지정한 사람들이 한다. 하지만 특별히 정해진 관리비는 없다. 직접 관리인에게 주는데 `주면 받고, 안주면 안받는' 수준이다. 관리비를 몇년 동안 안내거나 가족들이 원할 경우 주검은 화장해 납골당으로 옮겨진다. 자연히 묘지는 정리된다. 또 죽은 지 3년이 지나면 원래 있던 묘지에서 꺼내 오래된 묘지로 옮기는 것도 베트남의 오랜 장묘풍습이다.

보통 공동묘지에 매장하지만 사유지에 매장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시골에서는 집마당이나 논 한가운데에 묘지가 있는 것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죽음을 삶과 유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 베트남인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편집시각 2000년11월27일21시33분 KST

호치민/이형섭 기자sublee@hani.co.kr

 

   

독일과 프랑스-유명도 업적도 묻는 조촐한 '땅속'

 

독일 베를린시 서남쪽 첼렌도르프 공원묘지는 잘 가꾸어진 키큰 나무가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지난달 중순 방문한 이곳은 묘지답게 경건하고 고요함이 아침 공기를 가득 채웠다.

묘지 입구, 안내지도가 없었다면 빌리 브란트 전 수상 묘지를 찾는 일은 영 불가능할 것 같았다. 출입구에는 그를 비롯해 몇몇 유명인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묘비 위치를 표시한 안내도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안내 그림을 본 뒤에도 묘비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렬로 놓인 비석을 일일이 읽어가며 한참 헤매고서야 겨우 찾아냈다. `독일 통일의 아버지' 빌리 브란트는 그렇게 조용하게 묻혀 있었다.

`WILLY BRANDT'. 자연석을 다듬은 묘비에는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았다. 업적을 알리는 글귀 한줄도 없었다. 그의 무덤이 보통 시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비석 앞에 한 평 정도 잔디를 심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넓게 공간을 쓰고 있다는 것 뿐. 무덤 앞에 놓인 시들지 않은 꽃다발만이 그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정도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그가 묻혀있는 첼렌도르프 묘지는 본래 1945년 2차대전에 참전했던 이탈리아 군인 81명의 무덤을 시작으로, 묘지로 본격 개발됐다. 현재 4만여명이 묻혀있는 이곳엔 매장을 원하는 베를린 시민들은 누구나 묻힐 수 있다.

빌리 브란트의 `조촐한' 묘지가 준 감동은 프랑스에서도 이어졌다. 파리에서 출발해 테제베로 꼬박 2시간30분 달려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로 유명한 앙굴렘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일반 열차로 갈아타고 40분 더 달려 프랑소와 미테랑 전 대통령의 고향 자르낙에 도착했다.

주민이 5000여명 밖에 안되는 자르낙은 미테랑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차있는 마을이다. 미테랑 흉상이 놓인 공원, 생가, 그가 생전에 모금한 돈으로 지은 문화센터, 그리고 미테랑이 묻혀 있는 마을 묘지.

가족묘가 대부분인 마을묘지는 곳곳에 미테랑 무덤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세워 뒀다. 그러나 뜻밖에 `미테랑의 묘지'라는 안내판이 놓인 곳에 서니 돌로 만들어진 가족묘지엔 미테랑 대신 `로랭가(家)'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휴가 첫날 미테랑을 보기 위해 400㎞ 떨어진 도시에서 5시간을 달려 왔다는 플로랑스 피건(교육 공무원)은 “로랭은 미테랑의 어머니 성”이라고 가르쳐줬다. 자르낙 역장이었던 미테랑의 아버지는 가난한 청년이었는데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식초 공장 딸에게 장가들었다. 어머니 가문을 중심으로 한 가족 분위기 탓에 미테랑은 어머니 일가 가족묘에 묻혔다. 규모나 장식의 초라함 뿐 아니라 가부장제에 익숙한 우리 상식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무덤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그를 추모하러 온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위엄에 찬 미테랑 유택을 보러온 것이 아니라 `영원한 프랑스인' 인간 미테랑을 기억하러 온 것이다.

독일에서는…보험회사 장례·묘지비용 지원, 주검 병원에 두고 집에서 문상

30년째 독일 베를린에 살아온 김명자(59·식당경영)씨는 4년 전 남편을 이국 땅에 묻어야 했다. 암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남편이 끝내 세상을 뜬 것이다.

남편을 잃은 막막한 마음에 장례 치를 일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잘 갖춰진 독일의 사회시스템은 장례 때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일단 시신을 병원 보관실로 보내고 의료보험회사에 사망신고서를 냈다. 보험회사가 장례비 일부를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독일에선 시신은 병원에 있더라도 문상은 대부분 고인 집에서 이뤄져 김씨는 이를 따랐다. 밤새워 상가를 지키는 것이 부담도 되고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해, 문상객 응접도 낮 12시~밤 12시로 제한했다.

김씨는 묘지를 빌리 브란트 전 수상이 묻혀있는 첼렌도르프 공원묘지로 정했다. 병원에 안치됐던 시신은 묘지회사에서 정한 장례 시간에 맞춰 장례식 전날, 공원묘지 시신안치소로 옮겨졌다. 이튿날 묘지공원 내 장례식장에서 교회목사 주례로 장례식이 치뤄졌다. 독일에서는 보험회사와 묘지회사가 정한 터에 매장할 경우 묘지 비용이 별도로 필요없다. 고인 가족이 터를 고를 경우에만 추가비용 2000마르크(한화 약 100만원)를 더 내야 한다. 만일 화장을 원한다면 화장장을 갖춘 공원묘지에서 유골을 묻을 수 있다. 매장 때보다 공간이 1/3밖에 들어가지 않아 묘지이용비가 덜 든다.

김씨는 “독일에서는 허례허식이 중요하지 않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모두 장례를 간소하게 치른다”고 말했다.

편집시각 2000년11월23일22시35분 KST 한겨레/사회

독일 베를린·프랑스 자르낙/이주현 기자edigna@hani.co.kr

   

미국-케네디묘 치장않고 이름만...

가을비가 굵게 내리던 지난달 말, 미국 버지니아주 포토맥강변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

이곳의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 가족 묘역에는 빗속에서도 단체로 온 학생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추모객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재임중 암살당한 케네디가 얼마나 미국민의 존경을 받는지 새삼 느껴진다. 법령상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묘지 넓이가 80평인 것과는 달리 `케네디가' 묘지는 20평 정도다.

여기에 부인 재클린을 비롯해 태어나자마자 죽은 그들의 두 자녀와 동생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 등이 함께 묻혀 있다. 묘역도 매우 검소하다. 묘비에 이름만 있을 뿐 다른 치장은 없다. 묘역 뒷쪽에 조그만 원통 가스등이 연중 불을 밝힐 뿐이다. 가스료는 정부가 아닌 케네디가에서 부담한다.

모두 74만평의 규모에 봉분이 없는 평장(平葬)인 알링턴 국립묘지엔 장군묘역과 사병묘역이 구분돼 있지 않아 이등병과 장군이 1.36평의 똑같은 넓이에 묻혀 있다. 넓이만 봐서는 생전 계급을 알 수 없다.

참전용사와 그 유가족, 미국의 정치·사회·과학역사에 공헌한 25만여명이 묻혀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엔 연간 400만명 이상의 유족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방문객들은 비석 사이를 거닐면서 미국역사를 느끼고 전쟁영웅을 만나는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한국전 영웅들이 대부분 이곳에 묻혀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10여분 거리로 포토맥강변에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가가 있다.

당시 대통령 집무실과 침실, 노예들이 생활했던 건물까지 보존돼있는 생가 한쪽 귀퉁이에 워싱턴 묘가 있다. 그러나 그의 묘는 검소하다 못해 초라할 정도다. 허름하고 조그만 건물 안에 평범한 대리석 관이 2개 놓여 있다. 워싱턴 부부의 것이다. 건물은 문이 열려 있어 누구나 관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방문객들은 한결같이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안내인은 설명했다.

뉴욕시 외곽의 우드론 공동묘지. 맨해턴 북방 승용차편으로 30분쯤 가면 나타나는 이곳엔 울창한 나무가 우선 눈에 띈다. 갖가지 나무와 잔디가 조화를 이뤄 공원 분위기인 우드론 공동묘지엔 유명한 경제인, 정치인, 예술인, 언론인, 일반시민 등 30여만명이 누워있다.

미국 최고 백화점 중 하나인 메이시백화점 창업자 메이시가 부인 및 자녀 6명과 함께 묻혀 있다. 백화점 재벌의 묘역이 20평이 채 안된다. 호화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채 조그만 탑에 차례로 가족이름을 새겨놨을 뿐이다.

메이시묘지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 `퓰리처'상을 만든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조셉 퓰리처가 묻혀 있다. 잔디 사이 가로 30㎝, 세로 20㎝ 크기의 묘지석이 아니었다면 그의 묘지는 하루 종일 헤매도 찾지못할뻔 했다. 그 역시 부인과 자녀 9명 곁에 나란히 묻혀 있다.

우드론 묘지에는 또 현대 재즈음악가 듀크 엘링턴과 마일스 데이비스도 묻혀 있다. 이들의 묘는 비석에 오선지, 음자리표 등이 그려져 있어 생전에 음악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검소한 그들 묘지 비석 옆에는 평소 좋아했던 팬이 갖다놓은 꽃이 유난히 눈에 띈다.

뉴욕시장을 지낸 헨리 라가디아. 재임중 훌륭한 업적으로 큰 존경을 받아 이름을 딴 공항, 학교 등이 곳곳에 세워져있는 라가디아 전 뉴욕시장 묘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저명한 인사들은 바로 곁에 `장삼이사' 일반시민과 묻혀있어 위화감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수십배에 이르는 국토와 국민총생산을 자랑하는 미국.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묘지를 통해 신분이나 부를 과시하려는 `천박함'은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죽어서도 이웃과 공존하려는 모습이 눈에 띌 뿐이다.

미국에서는…시내·주택가 묘 친근한 모임장소, 공·사립묘 20년안 꽉차 화장 권장

 미국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매장을 주로 한다. 이점에선 우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봉분이나 비석을 세우지 않고 주로 평장을 하며, 묘의 넓이도 우리 봉분묘의 1/3 가량으로 1평 남짓이다. 다민족국가이긴 해도 민족이나 종교 차이에 관계없이 대부분 장례 절차가 비슷하다.

임종은 대부분 병원에서 맞이하며, 시신을 장례예식장으로 옮겨 장례를 치른다. 사망자의 3할 정도는 죽기 전에 장의사와 장례절차를 미리 협의한다. 자신의 죽음에 따른 부담을 가족에게 지우지 않기 위해서다.

시신은 방부처리한 뒤 조문객들에게 보여주는 게 관행이다. 시신을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방부처리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까운 친지가 아니면 안치실을 방문하지 않고 영결식에만 참여한다.

조문객은 헌화로 조문한다. 하지만 유족들에게 부의금을 전달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망자의 이름으로 사회단체나 교육기관 등에 낼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일정한 돈을 받는 경우는 있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공동묘지에 묻히며, 개인묘지 대신 교회나 성당 묘지에 매장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묘지는 공원처럼 잘 꾸며져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즐겨 찾을 수 있도록 돼있다. 묘지가 시내 중심가나 주택가에 있어도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시골동네 교회 잔디밭에도 묘지가 있어 신도들의 안식처로 쓰인다.

추석, 한식때 주로 찾는 우리와 달리 평일에도 참배객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50개주에 흩어져있는 53만5000여곳의 공·사립 묘지들이 앞으로 20년 안에는 꽉 차게 돼 최근 화장을 권장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국립묘지는 38개주와 푸에르토리코 등에 모두 115곳이 있다. 모든 현역·퇴역 군인들에게 개방된다. 물론 계급에 따른 차등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이민가 살다 숨진 동포들은 교회나 성당, 공원묘지에 대부분 검소하게 묻힌다. 미국 관행이 그렇기 때문이다.

허종식 기자jongs@hani.co.kr

편집시각 2000년11월22일22시27분 KST 한겨레/사회